회장 영어상태에 경영개선에도 웃지 못하는 사연

얼마 전 A그룹 홍보맨으로부터 저녁 늦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낮에 쓴 한 기사를 놓고 자신이 곤경에 빠졌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는 앞으로는 이런 식의 기사는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홍보맨을 힘들게 한 기사는 A그룹이 구조조정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실적도 개선됐다는 내용이었다. 기업이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는 내용은 통상 고맙다는 말을 들을 내용인데 어쩌다 해당 기업 직원들의 애를 태우게 됐을까.
사연은 이랬다. A그룹 회장은 현재 구속 수감된 몸이다. 그의 역할을 회장 가족 중 한 사람이 대리하고 있다. 회장의 부재는 대리인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대리인에 의해 경영이 호전됐다는 인과 관계가 성립됐다.
대리인은 이런 류의 기사에 상당히 민감해 했다고 한다. '회장이 없어도 또는 없어야 경영이 잘 풀린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홍보실 직원들에게 주의를 준 모양이었다. 한국 특유의 유교적 기업문화가 강하게 반영된 대목이다.
게다가 회장의 부재를 틈타 경영 전면에 나서고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시도로 비칠 소지를 걱정한 것도 같다. 자칫 훗날 '화'를 당할 처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땐 대외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고 잘 나갈 땐 적극 알리는 홍보맨 입장에선 참으로 '웃기지만 슬픈(웃픈)' 현실이다. 사실 '회장 부재=투자 침체=위기 대응능력 상실=경영 위기=국가 경제 악영향'이라는 고전적 프레임에서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서라도 새벽을 늦추고 싶은 게 A 기업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A 기업의 경영개선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정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시장 여건이 받쳐주고 있어서다.
지난 수년간 실적 악화와 오너 구속이라는 흔치 않은 악재에 주가 하락을 견뎌야 했던 A기업 주주들로서는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몇 년째 A기업 커버를 하지 않고 있다. 주가는 바닥을 기고 주주 게시판에는 온갖 욕설로 도배돼 있다. 당연히 애널리스트들을 찾아다니며 기업분석 재개를 요청하고 그동안 인내해준 주주들에게 보답해야 하지만 이런 기대는 회장 출소 이후로 미뤄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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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는 각양각색이지만 '회장님이 자유의 몸이 돼야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프레임은 견고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 경제 여건에서 이 프레임은 꽤 오랜 세월 유효할 공산이 크다.
현대중공업처럼 필요에 의해 소유와 경영이 선명하게 분리되지 않는 한 오너 중심 경영은 계속될 것이다. 그나마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대기업 총수의 역할과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적응하는 대기업 총수와 그렇지 않은 총수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