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수급 난항으로 채굴 대기 수요 줄서…"채굴량 줄면서 수익 리스크 커져"

30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자 100여대의 가상화폐 채굴기가 뿜어내는 열기가 후끈했다. 건물 외부와 연결된 지름 50㎝ 크기의 환풍기 4대가 쉴 새 없이 내부 열기를 빼내지 않는다면 찜통이 될까 걱정스러운 정도였다. 설비담당 직원은 "이달까지 채굴기 200대가 더 들어오면 온도 유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 가상화폐 채굴 전문업체 S사를 방문했다. 업계에서 이른바 '채굴장'으로 부르는 곳이다. 가상화폐 채굴에 특화된 전용 컴퓨터를 모아놓은 곳으로 보면 된다. ☞ 10월25일'가상화폐 채굴, 실제 수익은 얼마나 될까'참조
채굴장에선 고전력 기기와 장비가 24시간 풀가동하기 때문에 전력소비량과 열기가 엄청나다. 채굴기 1대가 섭씨 60~80도의 열을 낸다. 열기를 방치하면 채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부품 고장이나 오류 가능성도 커진다. 발생하는 열기를 외부로 빼내고 냉각시키는 냉방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S사가 강원도 산간을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곳은 비슷한 위도의 수도권보다 연평균 기온이 낮다. 공식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 통할 만한 업체는 대부분 강원도에 채굴장을 차렸다.
흔히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전기 먹는 하마'라고 하지만 가상화폐 채굴장도 뒤지지 않는다. 채굴기 1대가 1달 동안 소비하는 전력이 700k~1100kWh로 일반가정 소비전력의 2배를 웃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국내 전체 가구의 95%가 월 400kWh 이하를 쓴다.
기업형 채굴장이 갖춘 채굴기 규모가 1000대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채굴장 1곳에서 한달에 100만kWh를 소비하는 셈이다. 냉각시스템에 들어가는 전력까지 합치면 소비전력은 더 늘어난다. 이런 채굴장 10곳만 합쳐도 인구 7만의 홍천군 가정용 전력사용량과 맞먹는다.
채굴 전문업체의 관심이 전력소비량 절감으로 모이는 게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전력소비를 줄이려는 방책이 위법이나 편법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업계에선 상당수 채굴장이 시설을 허위로 신고하거나 근처 공장이나 농장에서 끌어쓰는 방식으로 최대 60% 정도 값이 싼 산업용이나 농업용 전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발각되면 차익의 2배를 물어내야 하지만 걸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허점을 노린 채굴장이 많다.

가상화폐 열풍이 이어지면서 채굴장이 우후죽순 늘고 있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당장 채굴장을 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채굴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그래픽카드와 GPU 수급 상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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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도체시장에서 GPU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제품 가운데 하나다. 웃돈에 웃돈이 붙으면서 용산전자상가에서도 최신 그래픽카드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한다.
S사 관계자는 "GPU 대기 수요가 늘어설 대로 늘어섰다"며 "연말까지 채굴기 2000대 입고를 목표로 추가 주문을 했는데 기다리는 것말곤 딱히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는 해당 화폐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따라 복잡한 연산을 반복 수행한 대가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고도의 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10나노 수준의 고성능 반도체가 필수장비다. 반도체업계에서 이 정도 수준의 미세 반도체 양산 기술을 갖춘 곳은삼성전자(193,100원 ▲6,900 +3.71%)와 인텔, TSMC 등 손에 꼽을 정도에 그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 급증을 발판으로 이어지는 반도체업계의 슈퍼호황에 가상화폐 열풍도 한몫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회사는 글로벌시장점유율 7위 수준의 미국 제조업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산(産) 칩을 쓰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채굴장이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는 가상화폐 가격급등 때문이다. 거품 논란과 각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의 대표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20일 6000달러(약 680만원)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만 상승률이 500%를 넘는다.
언젠가 실물화폐 대신 가상화폐가 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올 2월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전자결제수단으로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다만 비트코인 등 현행 가상화폐가 통화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비트코인만 해도 화폐 본연의 기능보다 투자 또는 투기적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 다른 이유로 세계 최대 채굴시장인 중국의 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를 지목하는 분석도 나온다. 당국의 규제를 피해 채굴 무대가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규제에 따라 시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투자수단으로 보더라도 리스크가 큰 게 사실"이라며 "채굴 경쟁이 심해지면서 최근 채굴량이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에 1~2대의 채굴기로는 전기요금 등을 감안할 때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 용어설명: 가상화폐는 해당 화폐의 프로그래머가 짜놓은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따라 연산을 수행한 대가로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가상화폐를 얻는 과정을 광산업에 빗대 '채굴한다'고 한다. 이런 연산작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컴퓨터는 '채굴기'라고 부른다.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로 알려진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을 선보인 뒤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리플, 대시 등 1000종이 넘는 가상화폐가 등장했다. 누구든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이를 사용하는 이들이 생기면 해당 가상화폐의 생성과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규제에 나서는 국가가 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