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녀 보유주식 누락해 조사받은 회장님…37년 묵은 고무줄 잣대

외손녀 보유주식 누락해 조사받은 회장님…37년 묵은 고무줄 잣대

심재현 기자
2022.02.14 05:05

[MT리포트] 특수관계인 낡은 족쇄에 걸린 기업들①

[편집자주] 대기업 총수(동일인)의 특수관계인 자료 제출 의무와 관련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수관계인의 범위가 '총수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으로 넓어 파악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누락시 형사처벌까지 가능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시대 변화나 전문경영인 중심의 IT 산업 부상 등 경제 환경 변화를 반영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은 2018년 6월 검찰의 공정위 압수수색을 돌이키면 아직도 속이 쓰리다. 당시 검찰은 공정위가 대기업 총수(동일인)의 특수관계인(친·인척) 자료 제출 누락과 관련해 봐주기 혐의가 있다며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압수수색에서는 공정위가 자료 제출 누락에 대해 고발 또는 무혐의 처분만 하도록 한 규정과 달리 자의적으로 경고 처분을 내린 사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공정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던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을 같은 해 11월 기소했다.

김 의장은 2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자료 제출 누락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점이 인정돼 2020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리한 기소를 강행한 검찰도 그렇지만 단순한 자료 제출 누락을 두고 규정에도 없는 경고 처분을 했다가 압수수색까지 받은 공정위의 '치부'가 드러난 사건이다.

기업 저승사자,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또다른 사정기관인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한 근본 배경에는 공정위가 자의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법 제도의 모호한 회색지대가 있다. 특수관계인의 범위가 친·인척에 대한 시대 상황이나 전문경영인 중심의 IT산업 등장 등 경제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자료를 누락하기만 해도 형사처벌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역설적으로 공정위가 해당 규정을 고무줄 잣대로 운영하면서 재량권을 남용해왔다는 얘기다.

법조계 한 인사는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에 봐주기 논란이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라며 "현재 규정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대착오 제도 공백…공정위도 고발 딜레마

대기업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보유 지분을 매년 신고하도록 한 공정거래법 68조의 입법 취지는 재벌이 친척을 이용해 편법적으로 그룹을 확장하거나 친족기업을 부당 지원하는 등 경제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감시,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근간에 있는 특수관계인 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1986년이다. 당초 총수의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배우자에서 2009년 혈족 범위가 6촌 이내로 좁혀졌지만 여전히 대가족 시대, 문어발식 선단경영 시절의 철 지난 기준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도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이 부인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의 언니의 사위 이상영 청연홀딩스 대표의 자료를 누락한 것을 두고 공정위가 심사 절차에 착수했다. 거래관계도 없고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 회사의 지분 현황이지만 특수관계인 신고 범위에 들어가는 탓이다.

국세기본법에서는 임직원 등 경제적 연관관계까지 특수관계인으로 본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551,000원 ▲10,000 +1.85%) 회장이 생전인 2016년 7개 관계사 임직원 2800명을 격려하는 취지로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37,950원 ▲250 +0.66%) 주식 73만주(시가 기준 약 1100억원)를 무상 지급했다가 세무당국이 증여세에 대주주 할증 30%를 가산해 부과한 당혹스러운 일도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현행 법령 가운데 이런 특수관계인 관련 규정이 있는 법령과 조문이 각각 168개, 717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규제 조항만 추려도 세금 관련 규제가 172개, 자격 제한 규제가 79개, 특정한 행위를 금지한 행위제한 규제가 76개다. 신고·보고·공시 조항도 40개가 넘는다. 기업들이 특수관계인 규제 조항을 경영 활동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는 이유다.

'녹슨 칼' 앞에 덜덜…"대안 마련 시급"

일각에서는 '총수=동일인=그룹 주인'으로 보는 동일인 제도 자체가 시대착오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거래법에 동일인에 대한 정의가 없는데도 재벌 체제 견제를 위한 행정 편의를 위해 공정위가 지분이나 인사권 등 내부 심사 기준에 따라 동일인을 지정하면서 투명성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총수 1명이 모든 계열사를 책임지고 지배할 수 없는 구조인데도 모든 책임을 총수에게 묻는 제도는 모순이라는 비판이 많다.

카카오(48,650원 ▼400 -0.82%) 사례에서 드러나듯 고의성이 없는 자료 누락까지 형사처벌하도록 한 규정은 대표적인 처벌 만능주의의 폐해로 꼽힌다. 공정거래법은 자료 제출이 1명이라도 누락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도 힘든 친·인척 현황 파악을 기업에 떠넘기곤 단순 누락에 대해서도 처벌을 규정한 제도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2015년 외손녀가 남편 회사에 수백만원을 투자한 사실을 신고 누락해 공정위 조사 뒤 검찰에 고발되려다 2020년 1월 별세하면서 경고 조치를 받는 것으로 종결됐다. 재계 한 인사는 "대기업 총수 일가에 형사처벌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정서적 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고의성이 없어도 조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나 기업 입장에서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인이나 특수관계인 제도를 당장 폐지할 수 없더라도 시대 상황을 반영한 대안을 만드는 작업은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해 10월 "대기업집단 시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제도 개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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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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