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기획의 윤리를 묻는 릴레이 전시가 시작된다. 문화예술기획사 아이테르는 2026년을 겨냥한 새로운 전시 프로젝트 '코리안 큐레토리얼'(Korean Curatorial) Vol.1을 공식 출범했다고 5일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전국 12개 전시 공간이 각기 하나의 주제를 전담하여 릴레이 형식으로 전시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한국적 큐레이션'의 실천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단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단발성 기획을 넘어, 지역성과 서사를 연결하는 전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아이테르에 따르면 '코리안 큐레토리얼'은 한국 사회에 깊이 각인된 감정, 기억, 제도, 장소, 정체성과 같은 복합적인 층위를 동시대 시각예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큐레이터는 단순한 전시 연출자를 넘어, 사회적 감각의 편집자이자 서사의 복원자로 자리매김한다. 지역성과 공공성, 지속가능성과 예술적 윤리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는 역할이자 지금 여기의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감각하는 실천자로서의 위치다.
2026년 Vol.1의 첫 번째 주제는 '흔적 없는 손의 역사 –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 노동에 대하여'다. 청소노동자, 간병인, 손재주를 지닌 노인, 가족 내 무급노동자, 지역 장인과 기술자 등 이들의 손은 사회의 하부 구조를 지탱해왔지만, 기록되지도, 기념되지도 못했다. 본 전시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포획되지 않은 손의 움직임, 구술되지 않은 기술, 반복되는 제스처에 주목하며, 그것을 예술의 언어로 되살릴 수 있는 작가들을 찾는다.
출품 공모는 오는 15일까지 이메일을 통해 접수 받으며, 선정 작가는 2026년 1월 11일부터 25일까지 스페이스 이신에서 전시에 참여하게 된다. 평면, 설치, 오브제, 영상, 문서기록, 다큐멘터리 등 장르의 제한은 없으며, 출품은 1인당 최대 5점까지 가능하다. 참여 작가에게는 오프라인 전시 기회는 물론, 도록 수록, 비평가 매칭, 참여 인증서 발급, 작가와 기획자, 관객이 함께하는 라운드테이블 등 다층적인 연계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적 방향성을 보다 깊이 있게 짚기 위해 구본호 부산남구문화재단 이사장의 특별 발제 세션도 마련된다. '코리안 큐레토리얼: 제도와 지역 사이, 기획자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발제는 공공과 민간, 제도와 지역 사이에서 기획자가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남는가에 대한 경험적 질문을 다룬다. 구본호 이사장은 공공과 민간 프로젝트를 넘나들며 수많은 기획을 이끌어온 문화행정가이자 실천적 큐레이터로서 지금 이 시대의 기획자가 서야 할 윤리적 위치와 전략을 제안할 예정이다.
공명성 아이테르 대표는 "'코리안 큐레토리얼'은 국제적인 큐레이션 철학과도 깊은 맥락을 공유한다. 특히 생전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던 코요 쿠오(Koyo Kouoh)의 실천적 철학, 'RAW 큐레토리얼'의 정신을 한국적 맥락에 계승하고자 한다. 코요 쿠오는 세네갈 다카르에서 RAW Material Company를 운영하며 제도 바깥에서 지역성과 공동체의 언어를 복원하는 큐레이션을 실천해왔다. 'RAW 큐레토리얼'은 단지 전시 형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로컬의 시간과 감정, 윤리를 재배열하는 방식이자 철학이었다"면서 "그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 내부의 말해지지 않은 기억과 기록되지 않은 노동, 구조화되지 않은 감정의 서사를 감각적으로 큐레이팅할 수 있는 방식들을 실험하고자 한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의 기획이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도달하기를 꿈꾼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