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구성요건으로 고소·고발 남용…한국 배임죄 기소 일본의 30배

배임죄는 정상적인 경영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도 회사에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인 형사 처벌이 가능해져 경영 활동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이 속전속결로 이뤄진 상황에서 배임죄 폐지 논의마저 더디게 진행되면 기업의 투자와 의사결정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기업의 미래를 위한 신사업 투자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례가 적지 않다. 5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대표이사 A씨는 2008년 한 벤처기업의 신기술 투자 요청을 받고 기술성과 시장성을 검토한 뒤 4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검찰은 해당 기업이 장기간 자본잠식 상태였고 이사회 결의와 담보 확보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A씨를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다만 법원은 단순한 투자 손실만으로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1·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업 정상화를 위한 결정이 형사 리스크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대표이사 B씨는 2010년 해외 호텔 개발을 위해 C회사와 합작 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추진했지만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당국으로부터 사업권 회수 가능성까지 통보받자 B씨는 추가 자금 유치를 위해 C회사 동의 없이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지분을 소각하고 신규 투자자를 유치했다. 법원은 B씨가 사업 정상화 이후 수익으로 정산하려는 취지였다고 보고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배임죄 고소·고발이 남용돼온 배경에는 모호한 구성요건이 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임무 위배'나 '재산상 손해 발생 우려' 등 포괄적인 요건 탓에 민사·상사 분쟁이 형사 처벌로 연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경찰의 배임죄 불송치 비율이 70%를 넘은게 이를 방증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2014년부터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인원이 연평균 31명인 반면 한국은 965명으로 약 31배에 달했다. 일본 인구가 약 1억2000만명, 한국이 약 5160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배임죄 적용 빈도는 한국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국은 배임죄가 형법(일반·업무상 배임), 상법(특별배임), 특정경제범죄(특경법)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3중 구조로 규정돼 중첩적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특경법은 1980년대 만들어져 기준이 현재의 경제 현실과 맞지 않고 상법은 사문화된지 오래라 관련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으로 기업인의 형사 리스크가 확대된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배임죄를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정상적인 절차와 합리적 근거에 따른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제하는 등 경영판단원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