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러닝화 공장서 찍어낸다…AI가 연 다품종 대량생산 시대

맞춤형 러닝화 공장서 찍어낸다…AI가 연 다품종 대량생산 시대

하노버(독일)=권다희 기자
2026.05.17 08:20

[산업전환 돌파구, 독일에서 찾다]<2>현실이 된 제조업 AI 전환
①상용화 된 AI 기반 자동화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전환(AX)·녹색 전환(GX)으로 요약되는 산업 변환기이자 '경제안보'로 대표되는 지경학적 전략이 주목받는 시대다. 전통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어떻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맞춤형' 러닝화 중창(미드솔)이 제작되는 과정 중 일부/사진=권다희 기자
'맞춤형' 러닝화 중창(미드솔)이 제작되는 과정 중 일부/사진=권다희 기자

세계 최대 산업 박람회 중 하나인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Hannover Messe·하노버 메세). 지난달 23일 박람회가 진행 중인 하노버 전시장(Fairgrounds Hannover)에 들어서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가 전시장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많은 부스 중에서도 유독 사람들의 발길이 오래 머문 곳은 인공지능(AI)이 두뇌 역할을 하는 공정과 로봇 전시 구역이었다. AI가 소프트웨어 화면 안에 머물지 않고 공장과 로봇, 공급망이라는 물리적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됐다.

사진=권다희 기자
사진=권다희 기자
'내 발'에 맞는 러닝화를 '대량생산'으로

AI가 실제 제조 현장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확인하려는 열기로 가득했던 곳 중 하나가 독일 대표 기업 지멘스 부스였다. 지멘스 부스 한가운데에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푸른색 러닝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서는 투명하고 촘촘한 격자구조의 러닝화 중창(midsole)이 3D 프린터 안에서 천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공정은 그동안 공존하기 힘들다고 믿었던 '개인 맞춤형'과 '대량 생산'이 한 공간에서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과정은 이렇다. 관람객이 검은색 패널 위에 올라서면 센서가 체중 분산과 아치 모양을 정밀하게 읽어내 화면에 발의 '디지털 지문'을 띄운다. 데이터는 그 즉시 3D 프린터로 전송되어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중창 설계로 이어진다.

신발 밑창처럼 규격화된 부품은 기존 방식대로 대량 생산하되, 착화감을 결정하는 핵심인 중창은 금형 없이 재료를 쌓아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로 '그때그때' 뽑아내는 식이다. 덕분에 공장은 한 라인에서 수천 명의 서로 다른 신발을 찍어낼 수 있는 '유연성'을 얻었다.

여기서 인공지능은 단순히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기계가 아니라, 설계·생산계획·물류 제어 등 서로 다른 시스템들을 하나로 묶어 지휘하는 '에이전틱 AI'로 활약한다.

지멘스의 사라 브라운 연구원은 로봇이 물건을 집다 실수로 넘어뜨려도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다시 세우려 시도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전에 자동화하기 어려웠던 영역까지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설명했다.

SAP 부스에서 '진저샷'이란 제품을 이동 중인 로봇/사진=권다희 기자
SAP 부스에서 '진저샷'이란 제품을 이동 중인 로봇/사진=권다희 기자

"수요 급증했는데 대응 가능해?"… 데이터와 대화하는 공장

SAP은 독일 발도르프 자사 부지에 직접 구축한 실제 공장을 실시간 화면으로 연결해 AI가 공급망 전체를 조율하는 현장을 공개했다.

부스에 전시된 로봇은 공장을 누비며 카메라와 센서로 설비 온도를 측정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 AI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이 정상인지 학습하고, 부품 고장이 예상되면 사람이 알아채기도 전에 다른 공급업체에 경고를 보내 미리 부품을 주문한다.

말리키 마틴 SAP 어드바이저는 "이제 사용자가 복잡한 화면을 조작할 필요 없이 챗GPT처럼 데이터와 대화하며 공장을 운영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가령 AI 비서에게 "제품 수요가 급증했는데 대응 가능한가?"라 물으면 AI가 재고와 생산 능력을 계산해 최적의 답을 내놓는 방식이다.

프랑스 IT 서비스 기업 캡제미니 부스에서도 가장 관심을 모은 건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사진=권다희 기자
프랑스 IT 서비스 기업 캡제미니 부스에서도 가장 관심을 모은 건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사진=권다희 기자
AI, 마케팅 문구 넘어 '물리적 실체' 되다

박람회를 주최한 도이체메세의 후베르투스 폰 몬샤우 무역박람회 및 제품관리 총괄이사는 이번 행사의 핵심을 '산업 전반에 걸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정의했다. 그는 "과거의 AI가 마케팅 용어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가 실제 현장에 적용돼 현실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디지털 세계 지능이 실제 '공장 바닥'의 로봇, 자율주행차량과 상호작용하기 시작했다"며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이 직면한 복합적인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노버 메세는 1947년 독일의 산업 역량을 소개하기 위해 시작됐다. 올해는 '기술의 다음을 생각하다(THINK TECH FORWARD)'란 슬로건을 걸고 지난달 20일부터 24일까지 열렸으며 약 3000개 기업이 참가했다. 방문객은 약 11만 명, 이 중 약 40%가 독일 외 지역에서 찾아온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권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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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권다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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