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의 경영철학과 직결되는 문제다."(삼성전자 고위관계자)
삼성전자 노사가 노조의 파업예고 단 하루 전까지 이어진 협상에서 합의점을 못찾은 배경에는 회사 측의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이 있었다. 성과급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AI(인공지능)발 슈퍼사이클(초호황)을 타고 단군이래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는 메모리사업부 직원들한테는 얼마든지 돈을 줄 수 있지만 적자를 내고 있는 사업부에까지 천문학적 성과급을 주는 것은 안 된다는게 명확한 회사의 입장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서 계속된 사후조정 협상이 결렬된 핵심 쟁점은 성과급 재원의 '부문·사업부 배분 비율'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은 크게 메모리사업부와 시스템LSI·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로 나뉜다. 현재 기록적인 영업이익은 모두 메모리사업부의 성과다. 시스템LSI·파운드리사업부는 그간 적자를 내왔다.
노조는 애초 '부문 70%, 사업부 30%'의 비율로 분배하자고 주장해왔다. 성과급 재원의 70%를 반도체부문 전체가 나누고 흑자를 낸 메모리사업부가 나머지 30%를 나눠가지는 구조다. 노조로서는 약 2만5000명 이상의 시스템LSI·파운드리사업부 직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과반 노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같은 무리수를 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협상을 주도하는 초기업노조에서는 최근 한달 사이 성과급 논의에서 소외된 DX(완제품)부문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약 4000명이 탈퇴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탈퇴가 승인될 경우 조합원 수는 6만7000명대로 급감하게 된다. 과반 노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은 약 6만4000명대다. 즉 시스템LSI·파운드리사업부 등에서도 추가 탈퇴 행렬이 이어지면 과반 노조 지위가 위태로워진다.
협상 과정에서 이 비율은 일부 조정됐다. 조정안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노위는 노조의 기존 요구보다 사업부 비중을 좀 더 높인 '부문 60%, 사업부 40%'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도 중노위의 조정안에 동의했다. 사측만 수용하면 전격 타결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삼성전자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성과급 재원을 45조원(영업이익 추정치 300조원의 15%)으로 가정하면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 직원들도 약 3억5000만원을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흑자를 내고도 성과급이 기존 '연봉 50% 상한'에 묶여있는 MX(모바일경험)사업부 등의 반발은 거셀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장은 적자지만 종합반도체 회사로서의 경쟁력에 기여한 측면이 있어서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일정 부분 성과급을 줄 수는 있지만 상식과 금도가 있다"며 "적자를 냈는데도 수억원의 성과급이 지급되면 기업 보상체계의 기본이 다 무너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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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긴급조정권 발동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어떻게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사후조정에서 노조 편을 들면서 회사를 압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연일 사장단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면서 논의를 이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의 배분 비율에서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번 원칙이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