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이 본계약을 앞두고 최종 서명만 남은 SK실트론 매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AI(인공지능) 중심 사업 재편을 노리는 그룹 입장에서 세계 3위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반도체 속도전'을 공언하며 이같은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3일 재계 및 IB(투자은행) 업계 등에 따르면 SK(668,000원 ▲11,000 +1.67%)그룹은 그동안 리밸런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추진해온 SK실트론 매각 계획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 웨이퍼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기초 소재라는 측면에서 SK하이닉스(2,360,000원 ▼3,000 -0.13%)를 주축으로 매각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SK그룹은 최근까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지분 19.6% 등 70.6%를 두산그룹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12월 두산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고, 최종 딜이 지난달 28일쯤 완료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돌연 관련 일정이 미뤄졌다. 그 배경에는 SK실트론의 미래 가치 재산정과 함께 그룹 내 매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외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AI 사업 드라이브와도 연관이 크다. 'AI 기반 제조 혁신'은 최 회장의 지론이나 다름없다. SK그룹이 최근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까지 AI 관련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구축하는 것에 집중해온 이유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필수 소재를 만드는 SK실트론을 파는 것은 그룹의 AI 전략과 배치된다는게 내부의 시각이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에 그룹 차원의 역량을 결집한다는 의미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 '컴퓨텍스 2026'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5년안에 전속력으로 메모리 반도체(웨이퍼 기준) 생산 능력을 2배로 늘릴 예정"이라며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 이를 극복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팩토리'·'반도체 속도전' 가속화..'뉴 이천포럼' 계기로 조직개편·인사 뒤따를 전망

"Please Make More(더 만들어 달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 난강전시센터 일대에서 개막한 '컴퓨텍스 2026'에서 SK하이닉스(2,360,000원 ▼3,000 -0.13%)의 부스를 찾아 이같은 문구를 HBM4E(7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실물 웨이퍼에 남겼다. AI(인공지능) 수요 급증에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HBM 공급 확대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황 CEO의 이같은 요청에 화답했다. 그는 SK하이닉스 부스 방문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5년안에 반도체 생산능력을 현재의 2배 수준(웨이퍼 기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할 공격적인 투자 역시 예고했다. 최 회장은 "전체 설비투자를 미리 계산해두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조달할 것"이라며 "장비와 건설, 토지, 물, 전기 등 모든 비용이 오르고 있지만 우리는 생산해야 하고 결국 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방송에 출연해 "앞으로는 AI를 생산하는 AI 팩토리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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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668,000원 ▲11,000 +1.67%)그룹은 이런 최 회장의 구상에 맞춰 AI 풀밸류체인(가치사슬)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2,360,000원 ▼3,000 -0.13%)는 반도체, SK텔레콤(125,200원 ▲13,000 +11.59%)은 AI 서비스, SK이노베이션(116,300원 ▲100 +0.09%)은 전력 및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을 담당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와 손잡고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SK실트론 매각 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SK그룹은 그동안 두산그룹과 진행해온 SK실트론 매각 협상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칩 제조의 핵심 소재인 웨이퍼(반도체 칩을 만드는 얇은 원판)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이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있다.
SK실트론의 경우 2023년 이후 그룹의 화두로 '리밸런싱'이 부각되면서 매각이 추진돼왔다. 최 회장은 당시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까지 언급하며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같은 해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에 낙점된 후 리밸런싱이 본격화됐다.
방향은 명확했다. 비주력 자산을 처분해 재무구조를 튼튼히하고 미래 투자를 위한 동력을 회복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이 과정에서 2024년 219개에 달했던 SK그룹 계열사수는 최근 151개까지 줄어들었다. SK그룹이 최근 2년간 진행해온 자산 효율화 규모는 약 13조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SK실트론 매각은 사실상 마지막 리밸런싱 작업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AI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이 도래하며 반도체 필수 소재를 만드는 SK실트론의 가치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SK실트론이 팔릴 경우 반도체용 웨이퍼를 그룹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AI 팩토리'와 '반도체 속도전'을 표방하고 있는 최 회장과 SK그룹 입장에서는 반길 수 없는 선택이다.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 백지화를 결정하면 사실상 '리밸런싱의 종료'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향후 리밸런싱을 대신할 그룹의 화두로는 'AI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이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13일 진행되는 '뉴 이천포럼'에서 최 회장이 그룹의 화두를 '긴축'에서 '확장'으로 급전환하는 메시지를 낼 경우 조직개편 및 사장단을 포함한 인사가 뒤따를 가능성도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