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하면 대개 향긋한 아라비카를 먼저 떠올리지만, 세계 생산량의 큰 축을 담당하면서 인스턴트커피 등에 흔히 쓰이는 로부스타 종도 있다. 이 로부스타의 번식 전략에는 유전자의 놀라운 셈법이 숨어 있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에서, 유전자의 영향력이 개체의 몸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비버가 댐을 만들어 환경을 바꾸듯 몸 밖에 구조물을 남기기도 하고, 연가시에 감염된 사마귀가 스스로 물에 뛰어들듯 다른 생물의 행동을 조종하기도 한다. 즉, 유전자는 자신의 몸을 넘어 다른 생물의 행동까지 마치 제것처럼 이용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부스타 역시 진화 과정에서 다른 생물의 행동을 직접 조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같은 커피나무라도 번식 방식은 각각 다르다. 아라비카는 스스로 수분(자가수분)할 수 있지만, 로부스타는 다른 나무의 꽃가루를 받아야 열매를 맺는 타가수분 식물이다. 바람으로도 꽃가루가 날아가긴 하지만, 확실하게 번식하려면 벌 같은 곤충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벌을 끊임없이 불러 들일 수 있을까?
로부스타가 찾은 해법은 다름 아닌 '카페인'이었다. 원래 잎과 씨앗에서는 높은 농도로 곤충의 신경을 마비시키던 방어 물질이었지만, 로부스타는 이를 꽃꿀 속에도 담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아라비카의 꽃꿀에도 약간의 카페인은 들어있지만, 로부스타는 그 농도를 훨씬 더 높게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벌이 쓴맛의 기준(역치)을 느껴 도망치거나 신경이 마비되지 않도록, 그 경계선을 정교하게 맞췄다.
2013년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실험은 이 미세한 농도 조절의 숨은 이유를 명쾌히 밝혀냈다. 카페인이 섞인 설탕물을 먹은 꿀벌은 단순한 설탕물만 먹은 꿀벌보다 해당 꽃향기를 3배 더 잘 기억했다. 독이 될 수 있었던 카페인이 미량으로 조절되면서, 벌의 뇌 속 기억 회로를 자극하는 강력한 '학습 장치'로 작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부스타는 벌을 자신에게만 찾아오는 '단골 배달부'로 길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는 벌과 식물 모두에게 이로운 공평한 거래일까? 2015년 발표된 후속 연구는 이 관계가 순수한 상호이익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카페인은 벌이 꿀의 품질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벌집 전체가 비효율적인 채집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꿀 속 카페인은 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커피나무 유전자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벌의 판단력을 조작한 유전적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확장된 표현형'의 대표적인 예다. 로부스타 유전자는 자신이 만든 화학물질 하나로 전혀 다른 종의 신경계에 침투해, 그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꿔 놓았다. '몸'이라는 물리적 경계가 유전자에게는 결코 절대적인 장벽이 아니라는 의미다. 도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물의 몸은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고 퍼뜨리기 위해 잠시 빌려 쓰는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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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스타의 유전자가 꽃가루 배달부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생물의 신경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사실은, 생명체 간의 관계 아래에 깔린 진화의 미묘하고도 서늘한 역학을 잘 보여준다.

벌은 오늘도 로부스타 꽃 사이를 오가며 그저 제 할 일로 하루를 채울 뿐이다. 자신이 왜 그 꽃을 그토록 잘 기억하는지 알지 못한 채. 글 / 커피 일공일일 (1011) 김은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