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업금지, 도장을 찍지 않아도 의무는 생긴다

경업금지, 도장을 찍지 않아도 의무는 생긴다

이동오 기자
2026.09.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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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 법무법인(유한) 대륜 변호사 법률칼럼

8년 가까이 독서실을 운영해온 A씨는 지난해 권리금 4500만원을 받고 B씨에게 양도했다. 그런데 1년도 되지 않아 A씨는 기존 독서실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건물에 스터디카페를 새로 열었다. 기존 이용자들이 그쪽으로 옮겨가자 B씨는 영업금지를 구하는 소송을 냈고,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A씨에게 스터디카페 영업을 폐지하고 10년간 동종영업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두 사람 사이에 경업금지 약정은 없었다. 계약서 명칭도 '권리금 계약서'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일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유한) 대륜
권일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유한) 대륜

약정이 없었는데도 A씨가 패소한 근거는 상법 제41조 제1항에 있다. 이 조항은 영업을 양도한 경우 다른 약정이 없더라도 양도인은 10년간 동일한 특별시·광역시·시·군과 인접 시·군에서 동종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도 '경업금지에 관한 정함이 없더라도 양수인은 상법 제41조 제1항에 따라 경업금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2021다227629)고 판시했다. 약정이 아니라 영업양도의 성립 자체가 경업금지 의무의 발생 원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첫 번째 관건은 그 거래가 실질적으로 '영업양도'에 해당하는지다. 대법원은 양수인이 유기적으로 조직화된 수익의 원천으로서의 기능적 재산을 이전받아 양도인이 하던 것과 같은 영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본다(2007다89722). 재판부는 계약서 제목이 권리금 계약서이고 경업금지 조항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영업시설·비품과 운영 관련 제반 사항 일체가 이전되도록 정해져 있었던 점, 잔금 지급과 동시에 양도인이 교육지원청 인허가를 인수인계하고 폐업신고를 하도록 한 점, 양수인이 같은 상호를 그대로 쓰면서 직원의 고용관계와 매출 자료까지 승계한 점을 들어 실질은 영업양도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 관건은 동종영업 여부다. A씨 측은 업종코드가 다르고 독서실은 부가가치세 면세, 스터디카페는 과세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용료도 월 10~14만원과 월 43~54만원으로 큰 차이가 있었고, 한쪽은 사실상 무인, 다른 쪽은 생활·학습관리까지 하는 관리형이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동종영업으로 보았다. 동종영업이란 영업의 내용·규모·방식·범위를 종합할 때 경쟁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업을 뜻하는데(2014다80440), 둘 다 본질적으로 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양수인 역시 '집중 관리반'을 운영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도인 스스로 이용자 일부의 이탈을 인정한 점이 경쟁관계의 방증이 됐다. 형식적 업종 분류가 아니라 실질적 경쟁관계가 기준인 셈이다.

그렇다면 양수도를 앞둔 사업주는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가. 첫째, 계약서 제목에 기대서는 안 된다. '권리금 계약'이든 '시설양도 계약'이든 상호·거래처·인력·영업자료가 함께 넘어가면 영업양도로 평가될 수 있고, 그 순간 법정 경업금지의무가 발생한다. 양도인에게 향후 동종 창업 계획이 있다면 그 범위를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유보해둬야 한다.

둘째, 별도 약정을 둘 때는 기간과 지역을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설계해야 한다. 상법 제41조 제2항은 동일·인접 시·군에 한해 20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약정의 효력을 인정한다. 전국 단위 금지나 무기한 조항은 그 한도를 넘는 부분에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기산점도 명시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번 판결은 계약체결일이 아니라 양수인이 영업을 개시한 날을 기준으로 10년을 계산했다.

셋째, 금지 대상을 실질에 맞춰 넓게 적고, 배우자·법인 등 제3자 명의를 통한 우회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대법원은 양도인이 그 영업을 타인에게 임대하거나 양도하더라도 영업의 실체가 남아 있는 이상 의무위반 상태는 해소되지 않는다고 본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37985 판결). 이번 주문도 '스스로 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형태였다.

마지막으로 위반에 대비한 제재 수단을 갖춰야 한다. 계약서에는 위약벌이나 손해배상액의 예정(민법 제398조)을 두고, 소송 단계에서는 민사집행법 제261조에 따른 간접강제를 함께 구하는 것이 실효적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은 하루 30만원의 간접강제금을 명했다. 다만 양수인이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지출했다는 공사비 471만원은 기존 시설 노후화에 따른 자체 영업비용으로 보아 기각했는데, 실손해 입증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분쟁의 승패는 도장을 찍었는지가 아니라, 상법이 마련해둔 법정 보호장치와 그 한계를 이해하고 계약 단계에서 이를 설계했는지에서 갈린다. 사업 양수도를 앞두고 있다면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경업금지 조항의 실효성을 법률 전문가와 함께 점검해두는 것이 가장 분명한 리스크 관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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