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비리와 비전' 사이의 롯데 형제

[기자수첩]'비리와 비전' 사이의 롯데 형제

조철희 기자
2015.10.26 03:30

진흙탕 싸움, 막장드라마, 점입가경. 최근 롯데그룹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고령인 아버지의 신병을 둘러싼 쟁탈전이나 서로의 비리를 까발리는 폭로전을 보노라면 그리 과한 표현도 아니다.

재계 5위 기업 롯데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겐 실망감과 냉소만 더욱 깊어졌다. 서로 상대 측이 훼손했다고 하지만 롯데의 유무형적 가치는 분명히 훼손됐다.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경영권 쟁탈전에서 상대의 비리가 아닌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당사자들은 한가로운 소리 말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경영 비전으로 후계가 경쟁하는 재벌기업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불행한 국민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머니투데이 취재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신 회장의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 계획이 약속대로 지켜진다면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신 회장은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와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호텔롯데의 일본계 지분을 5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호텔롯데의 주식을 취득하지 않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롯데그룹 지배력이 약해짐에도 불구하고 후대인 창업 3세대로의 세습을 방지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선진적 경영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의 뚜렷한 경영 비전이 이번 계획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더 들여다 봐야 하고, 계획이 제대로 이행될 지도 지켜봐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재벌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롯데는 물론 한국 기업사에서 매우 전향적인 결단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한편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아버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경영을 총괄하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 전 부회장의 비전은 다름 아닌 아버지인 것인데, 신 총괄회장의 경영 비전을 우리가 모른 지는 꽤 오래 됐다. 신 총괄회장이 맨손으로 지금의 롯데를 만든, 역사에 남을 뛰어난 사업가로 평가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그에게서 미래의 비전을 읽는 사람은 없다.

신 전 부회장은 지금 동생의 중국 사업 비리를 캐내 공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와 함께 자신의 경영 비전도 캐내어 롯데의 주주와 소비자들 앞에 공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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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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