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세대 재계 거목들 잇단 타계에 개인차원 공개조문...'재계 대모' 상징적 움직임 해석도

'은둔의 경영자' 이명희신세계(506,000원 ▲3,000 +0.6%)그룹 회장이 확 달라졌다. 수십년간 극도로 대외 행보를 자제해 온 그 이지만, 이제 거침없이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초 맏언니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빈소와 사돈지간인 LG그룹의 구자경 명예회장 빈소를 조문한데 이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영원한 유통 라이벌' 롯데그룹의 신격호 명예회장 빈소까지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모든 언론의 주목을 한데 받은 현장이었다.
지난 21일 이 회장은 신 명예회장 빈소에서 취재진에게 "(신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친구"라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참 좋아한다. 빈소에서 많은 얘길 나눴다"는 멘트까지 이례적으로 남겼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막내 딸로 1979년 신세계에 입사한 뒤 40여년 동안 언론 인터뷰를 했던 게 2005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베일에 가려졌던 이 회장의 등장이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15년 전 인터뷰에서 "가려져 있는 것을 좋아했고, 사실 영원히 가려져 있고 싶었다"고 했을 정도다. 전문 경영인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겠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던 터라 직원들도 이 회장의 얼굴을 잘 몰랐을 정도다.
신세계(506,000원 ▲3,000 +0.6%)그룹 관계자는 "친인척이나 친분이 깊었던 재계 오너 1~2세대 분들이 최근 잇따라 타계하면서 개인적으로 찾았다가 외부에 공개된 것 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 회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해체된 대우그룹 김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여사와도 오랜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국내 10대 대기업에서 아직 현역으로 경영 활동 중인 여성 인사로는 사실상 이 회장이 유일해 '재계 대모'격으로 불린다. 언론 노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늘 장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함께 모자(母子)가 외부에 나서는 것도 일종의 상징적인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계 인플루언서'로 현장형인 정 부회장과 달리 정유경 신세계 사장의 경우 '리틀 이명희'로 불리며 이 회장처럼 은둔 경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회장이 대외적으론 재계 대표 그룹으로서의 역할론을 보이고, 내부적으로는 존재감을 드러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온라인 상거래 시장의 급속 확대로 지난해 이마트 실적이 처음으로 적자를 겪는 등 부진을 겪은 시점과 맞물리는 상황에서 이 회장이 적극적인 대외 행보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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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이 '대형마트·복합쇼핑몰=정용진, 백화점·면세점·패션=정유경'으로 계열 분리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높은 가운데, 여전히 이 회장은 그룹 계열사 최대 주주로서 막강한 칼자루를 쥐고 있다.
이 회장이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18.22% 씩 보유하고 있어 그의 의중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 향배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전통적 유통 산업이 빅뱅 수준의 변혁기를 맞고 있는 중대한 시기에 다시 이 회장의 오너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