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 서울에서 열린 블라인드 와인 테이스팅 행사 '더 블라인드' 레드 와인 부문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전통 명가 와인들을 제치고 미국산 '포스&그레이스 파소 로블스 카베르네 소비뇽 2023'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브랜드나 산지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오직 맛과 품질로만 평가한 결과다. 업계에선 50년 전 글로벌 와인 업계의 판도를 바꿨던 역사적 사건인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이 최근 서울에서 재현됐다는 반응이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와인 시음회 얘기다. 영국 와인상 스티븐 스퍼리어와 파트리샤 갤러거가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행사로 당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프랑스 보르도·부르고뉴 와인과 신흥 산지였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테스트했다. 심사는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이 맡았다.

당시 고급 와인 시장은 사실상 프랑스가 독점했기에 미국 와인의 승리를 예측한 심사위원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레드 와인 부문에서는 미국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S.L.V. 카베르네소비뇽 1973(S.L.V. Cabernet Sauvignon)'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등 프랑스 보르도 와인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스택스 립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Napa Valley)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도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산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가 1위를 차지했다.
와인업계에서는 이날을 '훌륭한 와인은 프랑스에서만 나온다'는 오랜 통념을 깨뜨린 사건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이후 나파 밸리를 비롯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고 칠레, 호주, 뉴질랜드 등 비유럽 지역 와인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S.L.V. 카베르네 소비뇽 1973은 현재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이 선정한 '미국을 만든 역사적 유물(Objects that Made America)'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미국 와인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파리의 심판 레드 와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던 스택스 립의 'S.L.V. 카베르네 소비뇽 1973'은 현재 와인 역사 속 자료로 남아 일반 소비자는 물론 애호가들도 접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소비자들이 스택스 립의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아르테미스(Artemis) 카베르네 소비뇽'이 꼽힌다.

그리스 신화 속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에서 이름을 따온 이 제품은 나파 밸리(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 곳곳의 뛰어난 포도를 기반으로 일부 에스테이트 포도를 더해 잘 익은 검은 과실의 풍미와 탄닌, 단단한 구조감을 지녀 과하지 않은 우아함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스테이크나 양갈비 같은 육류 요리는 물론 진한 소스의 파스타나 구운 버섯 요리와도 조화를 이룬다. 아영FBC 관계자는 "반세기 전 프랑스 와인 시장을 흔들며 등장한 스택스 립의 역사는 이제 조금 더 우리와 가까운 주말의 와인인 '아르테미스'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