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C(설계·조달·시공) 역량 갖춘 부산 세종기술

전고체 배터리와 반도체 소재, 수전해 수소 생산설비. 산업군은 달라도 이들 공장은 모두 화학공정을 구현하는 생산설비가 필요하다. 부산의 강소기업 세종기술은 30년 동안 축적한 화학플랜트 기술을 바탕으로 이런 첨단산업 생산공정을 짓는 '숨은 조력자'다.
지난 10일 부산 강서구 세종기술에서 만난 김기현 대표는 "산업은 계속 바뀌지만 화학공정의 기본 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새로운 산업이 등장해도 결국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공장이 먼저 갖춰져야 하고 우리는 그 기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기술은 화장품과 정밀화학 플랜트에서 출발해 이차전지 전해액 생산설비까지 사업을 넓혔다. 약 8년 전부터 전고체 배터리 핵심 소재인 황화리튬(Li₂S) 생산설비 개발에 참여했고 현재 국내 주요 이차전지 회사의 공장 증설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세종기술과 자회사 세종E&C를 합한 지난해 연매출은 약 500억원 규모다.

세종기술은 오랜 기간 축적한 공정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온도·압력·교반 속도 등 공정을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노하우를 갖췄다. 실제 운전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다음 프로젝트에 반영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확장을 연착륙할 수 있었다. 기존 공정 기술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해온 것이 세종기술의 성장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중소기업으로서 드물게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을 자체적으로 갖췄다는 점도 대기업들이 세종기술을 찾는 이유다. EPC란 설계부터 장비 제작·설치·시운전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업이다. 기술력은 물론 자금력·인력·품질관리 능력까지 요구돼 국내에서도 대형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주도하는 분야다.
세종기술 공장 현장에서 모든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생산동에서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반응기와 원료를 균일하게 섞는 교반기 제작이 한창이었고 다른 동에서는 제작을 마친 교반기를 시험설비에 연결해 진동과 혼합 성능 등을 점검하고 있었다. 컴퓨터 유동해석(CFD)과 회전 시험을 통해 데이터가 쌓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설계와 제작이 따로 움직이면 수정과 의사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우리는 한 조직 안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다"며 "공정 레시피는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전을 통해 축적되기 때문에 결국 경험이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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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제주 함덕 수전해 수소 생산플랜트와 폐페트(PET)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다시 원료로 되돌리는 케미컬 리사이클링 플랜트 등 신재생에너지 공정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아니지만 미래 산업의 출발점이 되는 생산공정을 구축하며 산업 변화에 가장 먼저 발맞추고 있다.
김 대표는 "시장에 새로운 첨단 제품이 나왔다는 뜻은 누군가 생산공장을 몇 년 앞서 준비했다는 것"이라며 "좋은 기술 하나를 보유하는 것만큼 앞으로 어떤 산업이 성장할지를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구축한 생산공장에서 만든 소재가 글로벌 공급망을 거쳐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적용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