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디글리아니(F. Modigliani)의 평생소득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소득이 많을 때 저축을 하고 소득이 적을 때(은퇴를 했을 때) 저축을 헐어서 소비를 한다. 평생에 걸쳐 가용 가능한 소득을 전 생애에 골고루 배분함으로써 소비를 균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의 뒷면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행동이 전제되고 있다.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고, 이를 실행할 인내력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자기 통제력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행태주의 경제학자(behavioral economist)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소득이 많을 때에는 흥청망청 쓰다가 은퇴 뒤에는 빈곤한 삶을 이어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싱가폴의 CPF(Central Porovident Fund)라고 하는 강제저축은 인간의 나약함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준 대표적인 예이다. 싱가폴의 근로자들은 자기 소득의 20% 내외를 강제로 저축해야 하는데, 이 저축은 주택 구입비나 노후 생계비 등으로만 쓸 수 있도록 강제되어 있다.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공적 연금도 인간의 나약함에 대응한 강제저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택시장에도 강제저축이 존재한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자가의 강제저축 효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택을 구입할 때, 먼저 주택구입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을 한다. 종자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이 돈에다가 주택저당 대출금을 더해 주택을 구입한다. 주택을 구입하고 난 뒤에는 매달 꼬박꼬박 주택저당대출의 원리금을 갚아나가는데, 원금을 갚아나간다는 것은 곧 저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전세제도에도 이런 강제저축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전세로 임대주택을 얻기 위해서는 저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전세 만료시마다 전세금을 올려주기 위해 저축을 해야 하며,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주더라도 대출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저축이 이루어지게 된다.
주택학자들은 그동안 자가의 강제저축의 효과가 진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보여 왔었다. 그동안의 연구결과에 따르며, 자가에 거주하는 가구의 순자산은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의 순자산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결과는 자가 거주자의 특성과 임대주택 거주자의 특성이 동일하다고 가정하였을 때의 결과이다. 이는 자가 거주자가 동일한 조건의 임대주택 거주자에 비해 더 많은 저축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의 강제저축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분석에 의하면 전세입자의 순자산은 동일한 조건 하에 있는 월세입자의 순자산보다 크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결과에 대한 해석은 아직 유보적이다. 원래부터 전세입자의 순자산이 월세입자의 그것보다 컸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전세입자가 강제저축 형태로 자산을 더 많이 축적하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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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자가나 전세가 강제저축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주택저당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은 원금 상환형이어야 한다. 원금이 조금씩이라도 상환이 된다면, 자가나 전세도 가계의 미래를 대비하는 훌륭한 강제저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던 우리 윗세대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세가격이 올라가더라도 결국은 그 돈이 내 돈이고 내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전세제도를 선호해 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