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슬픈 이야기 하나 할까요?

[MT시평]슬픈 이야기 하나 할까요?

진양곤 기자
2013.06.07 06:00

휴가차 태국에 있는 리조트에 잠시 머물 때의 일이다. 시내관광을 마친 후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려는데, 앗! 무언가가 눈앞에서 꿈틀댄다. 이게 뭔가.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파충류, 도마뱀이다. 발 여럿 달린 파충류만 봐도 거의 공룡의 무게로 느끼는 내가 기겁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새끼 도마뱀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친 녀석은 발바닥에 힘을 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 또한 행여 그 녀석이 달려들어 물까 봐 잔뜩 움츠렸다.

“이걸 어떡하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스스로 나가길 기대하며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참 후 들어오니 웬걸, 녀석이 여전히 욕실에 있는 게 아닌가. 갖은 수를 다 써서 내보내려 했지만 경계심 가득한 녀석은 더 깊숙이 숨어들고, 간만의 휴가를 새끼 도마뱀과 티격태격하며 시간 다 보내겠다고 푸념하던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뿌리는 모기약.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노니, 별 생각 없이 모기약을 뿌리고 한참 후 욕실에 들어가보니 좀 전 그 자세 그대로 새끼도마뱀은 죽어 있었다. 종이에 담아 버리려 가까이 다가선 순간 내 가슴은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채 감지 못한 녀석의 눈을 자세히 보고 만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괴물 같고 징그러운 파충류의 눈이 그렇게 초롱초롱하고 예쁠 줄이야.

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다. 생각은 없어도 본능과 감정은 있을 터, “얼마나 두려웠을까, 어쩌면 어미가 목 놓아 찾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들로 인해 너무도 미안하고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그 녀석이 내게 해를 끼친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단지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녀석을 가벼이 죽인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배운 내 극단의 이기심에 짱돌을 찍으며 새끼 도마뱀을 화단에 묻어 주었다.

새끼 도마뱀의 반짝이던 눈이 머릿속에 맴돌던 그날 저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이 처음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저씬 또 누구예요?”라고 물었던 건 아닐까. 날 물려고 노려 본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을 지도 모른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리조트는 나의 집이 아니라 그 녀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며 놀이터일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러서는 나의 생활과 편익을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내 사고의 경직됨과 편협함에 머리를 떨구었다.

새끼 도마뱀의 죽음이 내게 준 교훈은 자연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에 그치지 않았다. 나는 지율 스님을 떠올리며 소통에 관한 문제를 생각했다. 이름하여 ‘도롱뇽 소송’. 원고가 도롱뇽이었던 그 희한한 이야기는 10여년 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과정에서 환경단체와 국가 간의 대립으로 시작된다. 천성산에 터널을 뚫을 경우 그곳에 서식하는 도롱뇽 등 생태 파괴가 있을 것이라는 환경론자들의 저항이 거셌더랬다. 네 차례, 총 100일에 이르는 지율스님의 단식투쟁과 환경론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인 정부가 ‘환경영향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더 면밀하게 검토키로 함으로써 갈등은 봉합되고 결국 공동 조사 완료 후에 공사는 재개되었으며, 완공 이후 환경론자들이 우려하던 생태파괴는 없었던 것으로 발표되었다.

개발론자가 옳은지 환경론자가 옳은지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소통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본 새끼 도마뱀의 초롱초롱한 눈을 지율 스님 또한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도롱뇽의 슬픈 눈을 떠올린 한 쪽과 국민들이 KTX를 타고 다니며 행복을 만끽하는 미래의 모습을 떠올린 다른 한쪽이 자신의 머릿속 그림에만 집착한다면 어찌 소통이 될 수 있을까.

환경주의자들의 반발로 150억 원 정도의 건설비용이 더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논리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준 것, 그리고 서로 논의하고 대화하면서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법을 알려준 사례임을 생각하면 그다지 큰 비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작 과거의 일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또다시 격렬하게 대립하게 될 때, 우리는 과거의 일이 결국 비용에 불과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주 의료원, 밀양 송전탑 등 오늘도 전국 도처에서 갈등과 대립이 싹트고 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의 갈등과 대립을 지켜 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이 모든 일들이 눈물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대화로 잘 해결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소통은 공감력과 열린 마음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것이 좋은 결과로써 통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소통의 과정은 가끔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로는 용서되지 않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의 시대가 가져온 풍요와 편익 한 구석에 남아 있는 회한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공존하려는 의지와 행동만이 진정한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실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도마뱀이 나를 물까 봐 긴장했던 그 날, 모기약을 뿌리려던 그 순간 도마뱀이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머무는 곳에 허락 없이 들어와서 죄송해요. 하지만 나가는 길을 모르겠어요”였을지도 모른다. 나만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 즉 극단의 소통부재가 가져온 것은 너무도 어여쁜 도마뱀의 죽음이었고 교훈으로 남기기에 내겐 너무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어떠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있을지라도, 문명의 발전과 자연의 극복이라는 거창한 개발 논리를 떠나서 이제는 단 하나의 생명도 헛됨이 없이, 단 한 명의 소중한 인생이 낭비됨이 없이 서로 공

감하면서 신뢰하고 화합하는 소통의 장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노니, 소통에 관한 한, 이 글을 쓰는 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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