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통치자도 하지 못한 교황의 진심어린 위로

[우보세]통치자도 하지 못한 교황의 진심어린 위로

김고금평 기자
2014.08.18 05:24

[교황방한]

가왕(歌王) 조용필이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소록도를 방문해 ‘없는 자’를 위한 위문 공연을 펼쳤을 때, 대중음악계에선 이를 ‘특별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국내 최고 ‘슈퍼스타’가 가장 ‘낮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행보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였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두 번째 방문한 자리에서 노래 중간, 그리고 노래가 끝난 뒤 객석으로 뛰어들어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한센인 300여명과 일일이 손을 잡고 포옹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그들과 친구가 됐다. ‘친구여’를 부를 땐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함께 울었다.

톱스타가 보내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자신에게 평생 손 한번 건네줄 것 같지 않던, 멀게만 느껴지던 슈퍼스타의 스스럼없는 몸짓이 꾹꾹 억눌렀던 한센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공항에 내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히자마자, 많은 이들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동 받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 특별히 초대된 세월호 유가족은 교황을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대통령도 배석한 이 자리에서 모국의 통치자가 아닌 타국의 종교 지도자에게 정서적 친근감의 극단인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생경한 풍경이기도 했다.

마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오랜만에 찾아온 어머니를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듯한 장면이 스쳤다고 할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전부터 화제가 된 인물이다. 개혁가의 면모부터 따뜻한 선인의 모습까지 그의 전력은 이젠 지겹게 암송될 만큼 충분히 검증됐다. 그런 그가 방한 기간 내내 보여준 행보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제들 앞에선 낮은 목소리로 뼈아픈 곳을 찌르며 비수의 언어를 구사하는 개혁가의 모습을,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이 앞에선 사랑밖에 모르는 가족의 모습을 드러내며 감동위의 감동을 연일 선사했다.

알베르 카뮈는 ‘전락’에서 이런 말을 건넨다. “누구와도 친근한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자)은 보잘 것 없는 거지 한 명과 실제로는 하룻밤을 제대로 지낼 수 없고, 개인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만이 한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고.

교황이 ‘꽃동네’에서 보여준 사랑의 실천은 ‘거지와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면모를 확인한 자리였다. 거기에서 종교인의 권위나, 누리는 자의 표정 같은 만들어진 포장의 이미지는 찾기 어려웠다. 교황은 평소 생활이 마치 그런 것처럼 그렇게 불편하고 모자라고 없는 이들의 삶속에 들어가 아픔을 어루만졌다.

교황의 한국 방문에 비난의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를 새로운 신자 확대 시장으로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있고, 부자 복지시설 방문이 ‘낮은 곳’을 대하는 태도와 역행한다는 비난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교황에 열광하는 것은 종교지도자가 으레 갖는 위상때문이 아니라 참된 삶에 대한 그의 진정성있는 성찰과 태도 때문이다.

‘권위’는 벗어던질 때 가장 아름답고, ‘권력’은 낮은 자로 향할 때 가장 돋보인다. 이 사실을 우리나라 ‘높은 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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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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