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인 듯 죄인 아닌 죄인 같은 너…'흡연자'

죄인인 듯 죄인 아닌 죄인 같은 너…'흡연자'

이승형 사회부장
2014.09.17 05:17

[광화문]흡연자를 위한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

"이 녀석아, 아버지 퇴근하시기 전에 재떨이 비워야지." "네!"

기억이 시작된 어린 시절, 단칸 방안에는 언제나 재떨이와 육각성냥이 있었다. 아버지의 '청자' 담배꽁초가 쌓인 재떨이를 비우는 건 장남인 나의 몫이었다. 이따금 그 대가로 20원짜리 라면땅을 사먹는 재미는 쏠쏠했다.

그렇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땐 버스에서도, 비행기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재떨이는 엄부(嚴父)의 상징과도 같았다. 안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런 시도를 할 생각조차 없었다.

"욕실 환기구와 베란다를 통해 담배 연기가 흘러들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대는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네 평범한 가장들은 안방은커녕 집안 어디에서도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다. 식구들의 등쌀도 무섭지만 이웃들의 눈총은 더 무섭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허구한 날 안내 방송을 한다. 어찌 보면 가부장적 시대의 마초들은 담배의 유해성 여론 확산과 더불어 몰락의 길을 함께 걸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도 같다.

"얼마 전에 헤어졌어." "아니, 왜?" "담배 때문에…."

주변에서 금연 문제로 애인과 이별했다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드문 풍경이 아니다. 담배가 결별이 원인인데 실연의 아픔을 담배로 달래는 일이 늘어난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 됐다. 물론 여전히 뻔뻔하게도 길거리에서 끽연하는 낯 두꺼운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그런 짓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오늘도 흡연자들은 '극히 사적인 공간'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 집 이상의 사적 공간을 찾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자네, 아직도 담배 피우나? 쯧쯧…."

비단 집안이나 집밖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제는 직장에서도 흡연자들은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일찌감치 금연한 상사로부터 핀잔듣기 일쑤고, 심지어 승진에도 영향을 미치니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무엇을 들이대도 변명일 뿐이다. 애연가로 유명했던 역사 속 위인들, 조선시대 임금 '정조'나 시인 '공초 오상순'을 들먹이며 항변해봐야 금연의 당위성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흡연의 긍정적 측면은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진 지 오래다.

담배세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 안대로 담배값이 오를 경우 하루 한 갑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내야 할 연간 세금이 121만원이 넘는단다. 9억원짜리 아파트 가진 사람의 재산세와 연봉 4700만원 받는 사람의 근로소득세와 맞먹는다. 팍팍한 살림살이, 담배로 달래던 사람들에겐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18년간 담배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97년으로 53억갑을 기록했다. 1997년은 외환위기가 시작돼 전 국민이 고통받던 시기였다. 힘들면 힘들수록 담배를 찾는 이가 늘었기 때문이다. 월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 가구의 총 소비지출 중 담배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인 가구의 3.2배에 달했다는 올해 2분기 통계는 이를 반증한다.

이제 선택만 남았다. 담배값 오르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담배의 '낙'을 버리고 정부의 권유(?)대로 '건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더 내더라도 하던대로 하면서 이 사회의 '악'으로 남을 것인가.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보니 담배만 더 생각난다.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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