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섹남' '앵그리맘'보다 중요한 것은…

'뇌섹남' '앵그리맘'보다 중요한 것은…

나윤정 기자
2015.03.30 06: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얼마전 ‘잘못 쓰는 높임말’에 관한 기사가 나간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단연 ‘수고하세요의 대체말’이다.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명확히 짚어주긴 했지만, 정작 대체말을 물으니 난감하다. ‘다음에 또 뵐게요. 먼저 나가겠습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 정도면 되려나 했는데, ‘회사에만 어른이 있는 건 아니잖나’에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시 연락하는 그날까지 건강하세요, 하시는 일 잘 마무리하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또 있다. 어른들과 전화한 뒤 끊을 때 자주 쓰는 ‘들어가세요’다. 시작은 ‘여보세요’로 하는데 어쩌다 ‘들어가세요’로 끊게 됐을까. 어원이 궁금하다. 하지만 어원 혹은 유래와 관련하여 공인된 설도, 검증된 주장도 없다. 결국 개인적 견해를 피력할 수밖에 없는데, 요약하면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대화의 장’에서 대화를 나눈 뒤 끝나면 각자 그 공간을 떠나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들어가세요’라고 한다는 것.

둘째는 한국에 전화가 귀했던 시절 생겨난 말이라는 것이다. 전화를 걸기 위해 시내 공중전화나 읍내 전화국까지 ‘나갔던’ 사람에게 전화받은 사람이 이제 집으로 ‘들어가시라’는 뜻으로 전화를 끊을 때 썼다는 것이다.

둘다 설득력은 있어보인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선 ‘들어가세요’도 명령형이므로 잘못된 말이란다. 그럼 이 역시 대체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결국 ‘수고하세요’와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알아서’ 써야 한다는 결론밖에 안나온다.

지난 25일 국립국어원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일간지 등 139개 온·오프라인 대중매체에 실린 신어 334개를 조사한 ‘2014년 신어’를 발표했다. ‘언어 파괴’라는 비난을 받긴 하지만 신조어는 당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 구실을 한다. 연애관, 이성관까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문득 국립국어원이 왜 이런 신조어 조사를 ‘대대적’으로 하는지 의아하다. 인터넷이라는 도구로 인해 지금은 신조어의 생성과 발전, 소멸이 그 어느 때보다 숨가쁘게 진행되는데 말이다. 지금이야 ‘더 재밌게’ ‘더 자극적이기’ 위해 사용한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신조어는 유행어처럼 잊혀질 게 아닌가.

게다가 이번 신어에는 ‘오포 세대’(생활고로 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주택구매를 포기한 세대) ‘임금 절벽’(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현상) 등과 같이 씁쓸한 현실을 다룬 말도 있지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와 지적매력이 있는 남성) ‘앵그리맘’(자녀의 교육과 관련한 사회문제에 분노해 그 해결에 적극 참여하는 여성)과 같이 외래어를 기반으로 한 비율도 64%로 높았다.

차라리 ‘수고하세요, 들어가세요’ 같이 생활 속에서 잘못 쓰이는 우리말들을 정확히 정리해주는 건 어떨까. 요즘 카페, 병원, 마트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잘못된 높임말 등은 제대로 몰라서도 문제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없어서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새로운 말, 남의 말을 더 알리는 것도 물론 국립국어원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에 앞서 바른 우리말을 제대로 알려주는 게 기본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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