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롯데사태와 갑을문화

[우보세]롯데사태와 갑을문화

송정훈 기자
2015.08.10 03:30

"절대 안됩니다. 조용히 있는 게 상책입니다." 얼마 전 중견 생활가전업체 마케팅 임원에게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선두를 차지했는데도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얘기였다. 의아한 생각에 이유를 물었다.

사정은 이랬다. 시장에서 대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 회사는 과거에도 대기업을 근소한 차이로 제쳤다. 자체 실적 집계 결과이긴 하지만 그 때마다 경쟁 대기업은 어김없이 자금력과 그룹의 지원을 등에 업고 20~30% 수준의 대규모 가격할인 등 프로모션에 나섰다고 한다. 결국 이 업체는 고스란히 대기업에 시장을 잠식당해 매출과 수익이 곤두박질치는 타격을 입었다. 이 관계자는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본주의 시장에선 어디든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하지만 갑의 우월적 지위 남용이 도를 넘어서면 갑을 간 양극화는 점점 심화된다. 더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지만 덜 가진 자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대중소기업은 갑을 문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 중 하나다.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불공정 거래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이다.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행여나 납품단가 인상 요청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해당 고객사의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거래 중단이나 축소 조치라는 불통이 튈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1.7%가 납품단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반면 절반에 가까운 48.7%가 납품 단가 인상을 요청한 경험이 없다고 답해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막장 드라마 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는 롯데그룹의 2세 경영권 다툼으로 대기업 순환출자 지배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룹총수가 쥐꼬리만 한 그룹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의 대규모 순환 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경영을 방치하면 제2, 제3의 롯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과거 숱하게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요지부동이던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게 순환출자 지배구조 개선에 칼을 꺼내든 형국이다. 여기엔 우리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특정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해당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결국 우리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대중소기업의 갑을문화 역시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엄연한 불법은 물론 합법을 가장한 불공정 갑을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만연해 있다. 이미 순환출자 지배구조처럼 곪은 대로 곪아 우리 경제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 뿌리 깊은 불공정 갑을문화의 해소를 위해서도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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