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년부터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은 더욱 어려워져 청년고용절벽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는 것은 이런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정치세력과 노동계는 노동개혁이 아닌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재벌들이 투자나 일자리 창출은 하지 않고 막대한 사내유보금만 쌓아가고 있는 한편 후진적인 기업소유지배구조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장에서도 이런 주장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국정감사는 본래 국회가 정부의 국정 전반에 관해 조사를 하는 것으로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주된 기능이다.
하지만 민간인인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소환해 호통을 치고 정부정책이 아닌 대기업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된 것이 국감장의 현재 모습이다. 재벌대기업들이 쌓아놓고 있는 돈을 풀고 경영권을 약화시키지 않는 한 저성장의 문제도 청년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일갈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흔히 회자되는 것이 소위 ‘사내유보금’이다. 사내유보금은 증자 등으로 발생한 자본잉여금과 영업을 통해 얻은 이익잉여금의 합이고 이는 누적되는 것으로 기업의 이익이 늘어날수록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내유보금은 대부분 공장, 생산설비 등 유무형 자산의 형태로 존재한다. 작년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 683조원 중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하고 남은 현금성 자산은 118조원에 불과하다. 현금성 자산도 여유자금이 아닌 기업의 영업, 생산 활동에 필요한 자금이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을 풀어서 투자, 고용을 늘리라는 것은 기존 공장을 팔아 새 공장을 지어서 고용을 늘리라는 말과 다름없다.
천문학적으로 쌓인 사내유보금을 회수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과 대기업들의 비과세감면 대폭 축소를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주장하고 있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기업의 세부담을 늘려 투자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법인세율 인상으로 세부담이 늘면 수익이 줄고 기업의 투자·고용 여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비과세감면의 축소는 투자·고용 및 R&D에 대한 유인을 줄이는 것이다. 이런 세부담의 증가는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투자와 고용뿐만 아니라 세수확대에도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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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논쟁을 촉발시킨 또 다른 계기는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다. 하지만 롯데는 최근까지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환경, 사회적 경영, 지배구조 종합평가에서 롯데를 우수기업으로 선정했고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평가에서도 롯데는 5년 연속 세계최고 유통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는 최근 매년 법인세를 7000억원 이상 납부했고 올해 투자액만 7조5000억원에 달하며 10만 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투자와 고용, 그리고 납세를 통해 국가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업을 드라마 같은 경영권 분쟁이 있다고 해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기업들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 침체로 그동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마저 급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산업과 시장의 창출을 위한 혁신과 이를 위한 규제개혁,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이다.
재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대한 증세와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위기를 키우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