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 서울시향 떠난다는 정명훈 예술감독…사과 한줄 없는 편지 내용에 억울함만 호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가 편지의 서두를 장식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완전 다르게 전개되더군요. 정명훈 예술감독님이 29일 단원과 직원에게 보낸 편지, 잘 읽었습니다.
이날 부로 서울시향을 떠나겠다는 입장과 음악감독으로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하셨더군요.
편지를 읽는 동안 감독님의 편에 서서 이해하려고 애를 썼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동감을 표시하고 슬픔을 공감해야할지 난감했습니다.
편지에서 감독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인간’, ‘음악가’, ‘한국인’을 차례로 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악인’이 ‘한국인’보다 앞선 이유에 대해선 “이념과 사상을 넘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음악이고, 그 음악은 순수한 위대함을 지녔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애라고 강조하셨지요.
그러면서 그것이 유니세프를 통해 돕는 것이든, 서울시향의 경우처럼 전 대표에 의해 인간적 대접을 받지 못한 직원을 돕는 것이든 감독님은 끝까지 인간애를 발휘할 것이라고도 다짐했습니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 사건을 감독님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넘는 박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임 사장을 내쫓기위해 날조한 이야기라고 고소를 당했고, 서울시향 사무실은 ‘습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면 그것이 ‘습격’인가요? 경찰이 1년간 조사해서 직원이 무고죄의 혐의를 받으면 그건 ‘박해’인가요?
습격과 박해는 경찰의 탄압을 암시하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그건 경찰이 일방적으로 ‘직원 죽이기’에 나섰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감독님은 경찰 조사를 하나도 믿지 않으시는 건가요? 경찰 조사는 믿지 않고 직원들의 말만 믿는 감독님은 세 번째로 말씀하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감독님은 또 직원의 고통을 설명하는 사례로 성추행 당사자 곽모씨를 섭외했다고 경찰조사결과에서 드러난 비서 백모씨를 언급하면서 ‘출산 후 3주에 70시간이 넘는 조사를 차가운 경찰서에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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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억울한 누명을 쓰고 1년 365일 차가운 방에서 ‘성추행녀’로 가슴앓이 한 박 전 대표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았나요? 행여 길을 걷다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 꽁꽁 숨어다니면서 억울함 하나 풀겠다고 17명을 상대로 싸워 온 한 사람의 숨죽인 대항은 생각해 보지 못했나요? 감독님을 무작정 따르던 직원들만 ‘인간애’의 대상이고, 끝까지 부인하는 단 한사람의 심정은 비인간애의 전형인가요?
음악, 그리고 음악인은 감독님 말씀처럼 ‘서로 돕고 서로 살아가기위해’ 필요한 정체성인데, 편지의 어느 구절에서도 직원들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외에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대질 조사 과정을 통해 감독님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직원들의 말이 수시로 바뀌고, 증거가 사라지는 팩트들을 만나지 않으셨나요. 게다가 종국에는 감독님 부인마저 성추행 조작을 지시한 증거까지 나타났습니다.
이 정도로 사건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정도면, 책임자의 태도는 분명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있는 사퇴와 사과, 이보다 더 선행할 일이 무엇인가요? 예술감독직에서 내려오면서도 “어쨌든,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가 우선이 돼야하지 않겠습니까.
가족이 연루된 사건, 직원들의 말이 뒤바뀐 충격적인 반전 등을 겪으면서도 책임자가 ‘진실은 승리할 것’이라든지 ‘한 사람의 거짓말 때문에 업적이 무색해졌다’는 식의 억지 주장과 보호 논리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이것은 서울 시민이 지금껏 살아왔던 다른 어떤 도시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감독님은 거짓과 부패는 추문을 초래하지만 인간의 고귀함과 진실은 종국에는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거짓은 직원들의 몫이고 부패(횡령)는 감독님의 소유였습니다. 그걸 밝히기위해 지금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떠나는 편지에서도 감독님은 여전히 ‘피해자’로 남으려고 하시는군요.
편지에서 적어도 횡령에 대한 사과, 부인을 대신한 사과 멘트 한조각이라도 기대했던 게 크나큰 실수였을까요? 지금 서울시민은 세계적인 지휘자의 능력보다 양심있는 리더의 책임있는 사과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