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

#1948년 윈스턴 처칠은 유럽의회 연설에서 수세기 동안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의 미래를 생각하며 나름대로의 ‘유러피언 드림’을 제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나라 국민들이 자신이 조국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하고, 이 넓은 대륙에서 어디를 가든 ‘편안하다’고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유럽’을 만듭시다.”(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정치인이 내뱉은 이 말은 당시 만해도 말 그대로 꿈이었다. 유럽은 87개의 언어와 방언을 사용하는 100개 민족이 오랫동안 서로 으르렁대며 살던 땅이었다. 당시 이 복마전 같은 지역을 하나로 묶는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는 만일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이 어떤 이유에서건 하나의 연합 국가체제로 통합한다는 가정만 해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유럽’은 꿈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됐다. 유럽 국가들은 대륙을 휩쓴 전쟁의 주요 원인인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차지하려고 오랫동안 싸워온 루르강과 자르강 사이 산업지대의 석탄과 철강 생산을 통합하는 1951년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설립을 시작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마침내 1993년 유럽연합(EU)을 탄생시켰다.
다양성, 포괄성, 삶의 질, 지속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평화 등을 기치로 내건 EU는 재정위기, 그리스사태 등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글로벌화 속에서 방향을 찾는 인류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역사적 아이러니지만, EU의 단초를 제공한 영국이 EU 공동체에 최초의 균열을 만든 주인공이 됐다. 영국은 지난 23일 28개 EU 회원국 중 최초로 43년만에 EU 대열에서 탈주하는 선택을 했다. 이른바 브렉시트다(Brexit)다. 왜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쏟아진다. 분명한 건 3.8% 포인트의 차이로 표심을 가른 것은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와 복지혜택에 좌절하고 분노하던 저소득 노동자계층이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이다.
여기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 브렉시트 이후 배신의 막장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는 영국의 정치인들이었다. ‘EU에 약 22조원에 달하는 분담금을 내고 있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혜택을 별게 없다’ ‘우리도 일자리가 없어 먹고 살기 힘든데 왜 우리가 가난한 나라를 돕고 이민자들에 일자리를 줘야하는가'라는 정치인들의 선전선동은 저소득 노동자계층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과거 지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영광에 대한 추억도 신고립주의라는 마이웨이를 선택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브렉시트는 당장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EU 회원국의 추가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U와 영국의 결별이 완료될 때까지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는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파운드 약세 등 영국이 치러야할 댓가는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행히도 브렉시트 이후 요동치던 글로벌 증시는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계 자금의 이탈 우려가 제기됐던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은 오히려 순매수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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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의 나라 영국의 탈주에 주목해야하는 건 단순히 브렉시트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등 경제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해야하고,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의 부가 사회적 계급을 결정하는 ‘수저계급론’이 유행하고, 심지어 한국은 지옥과 같다는 의미의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이 영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 구조나 문제점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아서다.
꿈조차 꿀 수 없는 고달픈 현실에선 피어난 좌절과 분노는 퇴행적이고, 시대역행적인 악몽으로 폭주할 수 있다. 브렉시트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병폐들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