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공급조절한다니 분양가 높인다는 주택시장

[우보세]공급조절한다니 분양가 높인다는 주택시장

엄성원 기자
2016.08.31 04: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올해 분양 물량 감소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2~3년 후 집값 하락, 미분양 적체 등 공급과잉 부작용 현실화가 우려된다."(김경환 국토교통부 1차관)

"공급 과잉이요?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그런 걱정 없습니다. 규제 얘기가 나오는 게 처음도 아니고…. 또 며칠 저러다 말겠죠. 그런 거 신경 일일이 쓰면 될 일도 안 돼요."(서울 강남구 개포동 모 공인중개소 관계자)

정부가 주택 공급 전망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고 관리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정부의 백마디 말보다 '강남불패'와 같은 한마디 시장 격언이 더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이다.

시장의 외면은 어찌 보면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정부는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공급 과잉은 오지 않을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일부 지역에서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도 '일시적', '제한적'이라는 말로 시장을 안심시키는 데만 급급했다. 민간 시장 전문가들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아파트 분양이 이어지면 공급 과잉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거듭 제시했지만 정부의 확신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시장은 맞고 정부는 틀렸다. 지난해 분양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만큼 올해 분양 물량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란 정부의 확신에 찬 단언은 몇달새 헛말이 돼버렸다.

올 1~7월 전국 분양물량은 24만2145가구에 달한다. 사상 최대 분양 물량이 쏟아졌던 지난해 1~7월과 비교해 3.9% 감소했을 뿐이다. 올해 분양 물량이 지난해보다 25~30% 줄어들 것이란 정부의 앞선 예상과는 간극이 상당하다. 더욱이 1~7월 주택 인허가 물량은 41만6696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8.8% 증가했다. 건설업체들이 계획 중인 분양 일정만 꼼꼼히 따져봤어도 이렇게 늦어도 한참 늦은 뒷북을 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정부가 현실을 외면한 확신으로 일관하는 사이 시장은 다시 2013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공급 과잉 우려 속에 미분양이 속출하며 주택 매매시장과 분양시장이 동반 침체에 들어갔던 그 때다. 올 1~7월 미분양 물량은 6만3127가구로 2013년 11월 이후 최대다. 뒤늦게 전망을 수정하고 공급 관리 의지를 내비쳤지만 이미 시장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상황을 외면하는 사이 정부는 또 한번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정부가 공급 속도 조절을 통한 과열 진정을 외치는 사이 더 늦기 전에 부동산으로 한몫잡아야 한다는 투기심리가 오히려 더 빨리 커가고 있다. 정부 발표를 기점으로 서울의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분양가를 더 높여야 한다는 주민 의견이 득세하고 일부 단지는 분양권 프리미엄(웃돈)이 더 커졌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신뢰를 잃고 갈팡질팡하는 정부 정책이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앞당기는 신호가 되는 듯한 모양새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더 필요한 것은 수요-공급의 조화를 통한 시장 안정이 아닌 시장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안정감과 신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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