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이 남았는데 (여당의) 표 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지난 추석 연휴에 고향에서 만난 한 친지의 말이다. 해마다 맞는 명절이지만 다른 해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추석 차례상 대화에는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과 정부의 대응,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성주 배치 논란, 다음 주 시행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등이 단연 화제였다. 하나 같이 정부·여당에는 부정적인 사건들이다.
특히 청탁금지법은 가뭄과 함께 농심을 멍들게 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농사를 짓는 한 친지는 "청탁금지법이 농산물 수입 촉진법 아니냐"며 대놓고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예년 같았으면 추석 단골 메뉴인 한우나 과일 등의 선물이 주를 이뤘겠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전 첫 명절이었던 이번 추석에는 마치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5만원 이하 선물세트가 인기였다.
실제로 한 유통업체에 따르면 5만원 미만 선물세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7% 급증한 반면 30만원 이상 고가 선물세트 매출 비중은 전년대비 1%포인트 감소해 전체의 14%에 그쳤다. 이는 공무원·공기업 뿐 아니라 청탁금지법과 무관한 민간 기업에서도 5만원 이상 선물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된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농축산물 판매 위축으로 추석 대목이 사실상 실종된 셈이다.
부정부패를 없애겠다는 청탁금지법 취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자칫 '사람 관계' 소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는 모호한 법령 때문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것이라는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청탁금지법의 내용을 모르거나, 아예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 책임이 크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사안에 대한 대응이 늦었고, 홍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초등 교사 부인 때문에 자신이 법 적용 대상자에 포함된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는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직무 관련성의 범위가 애매하다.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차례상에서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앞으로 친지들끼리의 만남도 부담이라는 '웃픈' 얘기도 나왔다. 또 다른 친구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로 "적용대상 기관이 4만개가 넘고 주로 교사가 대다수라는 말을 들었다"며 "사소한 자리조차 연관 안 될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있겠나"라고 했다.
주무 부처는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청탁금지법 매뉴얼’을 내놓고 것으로 할 일을 다한 양 느긋해 할 수 있다. 뒷짐 지고 시범케이스가 걸리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법 적용 대상자가 400만명이 넘는 점을 고려하면 선의의 범법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더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 덕담이 이제 먼 과거 얘기로만 남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