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

#2010년 2월24일 미국 하원 정부개혁감시위원회 청문회장. 세계 1위 토요타자동차의 토요타 아키오 사장이 일본 억양이 섞인 영어로 “모든 것은 제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미국에서 발생한 토요타자동차의 브레이크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와 이에 따른 리콜사태로 그는 태평양 건너에서 열린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토요타 창업주의 손자인 그는 8시간 동안 진행된 청문회에서 미국 의원들에게 "예스(Yes)냐, 노(No)냐"는 다그침을 받는 등 혹독한 수모를 겪었다. 이런 장면들은 고스란히 일본 열도에도 생중계됐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제조업엔 ‘치욕의 날’로 기억됐다.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모노즈쿠리'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굴욕과 수모로 사태가 마무리된 건 아니다. 값비싼 대가도 치러야 했다. 토요타는 당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1200만대 이상 리콜했다. 연간 생산량과 맞먹는 규모였다. 리콜비용으로만 24억달러가 들어갔다. 소송을 낸 소비자들에게 16억달러를 배상했고 미국에선 자동차업계 사상 최대규모인 12억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최고 품질의 자동차'라는 이미지는 산산조각났다. 토요타가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6년 후. 한국 제조업의 자존심 삼성전자가 리콜 악몽에 시달린다. 야심차게 내놓은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잇따른 발화로 리콜 조치된 데 이어 결국 단종됐다. 출시 50여일 만이다. 당장 삼성전자는 막대한 리콜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주력제품 없이 연말 성수기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삼성전자가 감수해야 할 손실규모는 무려 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아직도 정확한 발화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력엔 지울 수 없는 상처다.
토요타 리콜사태 당시 발생요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토요타가 해외시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지나친 비용절감과 원가절감을 추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지적이 가장 설득력을 얻었다. 즉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동차에 들어가는 2만여개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을 무리하게 쥐어짜다 보니 품질관리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갤럭시노트7의 크기는 '가로 153.5㎜, 세로 73.9㎜, 두께 7.9㎜'다. 이 작은 공간에 1000여개 부품이 들어간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협력업체 수는 1차 500여개사, 2차 1500여개사, 3차 2500개사 등 총 4500여개사에 달한다. 1차 협력업체에 일부 외국업체가 있지만 대부분 국내 중견·중소기업이다.
삼성 스마트폰 품질의 제일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이들 협력업체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가 발빠르게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경영적 어려움에 직면한 협력업체들의 재고와 원자재를 전액 보상키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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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때마침 이재용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삼성전자의 새로운 리더십 시대가 열렸다. 흔히 '갑을관계'로 표현되는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제아무리 첨단 스마트폰이라도 부품 1000개 중 단 하나라도 불량이 나오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협력업체에서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 주먹구구식 발주관행 등으로 힘들다"는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최고의 품질과 기술력은 공염불이 된다. 언제든 무너질 탑이다.
단순 임가공을 담당하는 작은 3차 협력업체도 삼성 스마트폰의 주역이란 자부심을 갖고 최고의 품질을 추구할 수 있는 동반자적 협력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번 리콜사태가 삼성전자에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 될 수 있다. 벼랑 끝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세계 1위를 내달리는 토요타자동차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