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한국에서 기업 하기는 정말 어렵구나’라는 것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급급한데 권력 실세들에게 불려다니며 거액의 정치자금을 헌납하고 찍히면 오너 가족이라도 직책을 반납하고 해외를 떠돌아야 하니 정말 기업 하기 힘든 나라 아닌가.
물론 기업이 자금을 바친 대가로 특혜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나오지만 기업 입장에선 권력 눈치 보지 않고 돈도 바치지 않고 쓸데없는 간섭도 받지 않고 특혜도 받지 않고 그저 공정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여건에서 열심히 제품 만들어 팔고 서비스 제공해서 돈 버는 것이 최고로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게이트에서 나타난 권력의 집적거림은 예외로 친다 해도 일상적인 법 제도나 규제에서조차 합리적인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때로는 규제가 서로 상반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표적인 예가 기업소득 환류세제다. 환류세제는 기업의 한 해 이익 가운데 80% 이상을 투자, 임금 증가, 배당에 쓰지 않으면 미달금액의 10%를 과세하는 제도다. 금융업 등 설비 투자가 거의 없는 서비스업의 경우 투자액을 제외해 한 해 이익의 30% 이상을 임금 증가와 배당에 쓰도록 하고 있다. 환류세제는 기업의 이익을 투자와 임금 증대, 배당 등을 통해 가계 소득으로 이전시키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좋은 의도가 항상 동일하게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환류세제로 가장 큰 딜레마에 빠진 기업은 보험사다. 보험사는 2021년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라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보험을 팔았던 시점이 아니라 현재 금리로 시가평가해야 한다. 현재는 저금리라 시가평가시 보험부채가 급증하게 되고 이에 따라 보험업계 전체적으로 약 20조~30조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보험업계 전체 순이익이 6조300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1년까지 5년내에 쌓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익을 배당 등에 단 한 푼도 쓰지 않아도 필요한 자본을 확충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순이익의 30% 이상을 임금 증가나 배당에 쓰지 않으면 거액의 환류세를 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순이익 기준으로 교보생명은 100억원이 넘는 돈을, 삼성생명은 50억원 가량을 환류세로 납부해야 했다.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 여력이 떨어져 보험사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니 환류세를 피하자고 임금과 배당을 늘릴 수는 없는 형편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사들로선 환류세가 법인세처럼 반드시 내야 할 세금이 되는 모양새다.
은행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안 그래도 고임금으로 비판받아왔는데 임금을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스마트뱅킹·인터넷뱅킹 확산으로 지점을 줄이는 판국에 직원을 대폭 늘리기도 어렵다. 게다가 정부는 성과 평가 없이 급여가 결정되는 호봉제를 문제 삼으며 은행권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해왔다. 결국 은행들이 환류세제를 피하려면 배당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정치권에선 환류세제 도입 후 투자와 임금 증가 효과는 미미하고 배당만 늘어났다며 배당 공제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가 한편으론 성과연봉제 도입과 핀테크(금융기술) 활용으로 효율성 향상을 독려하면서 임금은 더 증액시키라는 모순된 주문을 하니 은행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비단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적으로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발달로 인력구조가 대대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기존 기업에 직원을 더 뽑든 임금을 올려주든 전체 임금액수를 늘리거나 배당을 많이 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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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정부와 정치권의 주문과 모순되는 규제가 고쳐지지 않고 유지되는 현실을 보면 최순실 게이트 같은 워낙 비상식적이고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다 보니 웬만한 비합리에는 무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배당을 많이 하면서도 자본 확충을 하고 성과연봉제를 하면서도 임금은 대폭 올리고 모바일뱅킹 등 기술을 확산시키면서도 직원은 많이 뽑아야 하는 정도의 모순은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