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

“다 만들어놓고 못챙겨온 신발만 수십억원어치다. 제품은커녕 내 옷도 다 못챙겨 나왔다. 당장 내일부터 막막하다.”(개성공단 신발제조업체 관계자)
지난 2월 11일 오후 9시 55분.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국사무소(CIQ)로 차량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우리 인력 280명 전원을 태운 귀환차량의 행렬이었다.
전날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을 전격 발표했다. 회사당 한 대씩 허용된 차량에 챙겨올 수 있는 물건의 양은 뻔했다. 피땀으로 일군 공장을 허겁지겁 빠져나오면서, 또 그 곳에 남겨놓은 원부자재와 제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기업인들은 눈물을 쏟아야했다. 그렇게 12년간 남북을 이어주던 개성공단의 문이 굳게 닫혔다.
벌써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123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국회를 찾아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거리에서 피해보상과 가동재개를 외치기도 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피해금액만 779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피해보상 불가, 피해지원 가능’이라는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무이자나 저리 대출만으로 정부 역할의 선을 그었다. 망각의 시계는 그러는 동안에도 쉼없이 돌아갔고, 개성공단 사태는 어느덧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지금까지도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바로 ‘왜’다. 당시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따른 남북 긴장감을 고려하더라도 정부가 설명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익목적으로 행한 행정적 행위’인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불을 보듯 뻔한 입주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전조치 하나 없었다. 더구나 정부는 2월초까지 “개성공단은 대북제재 수단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10일 갑자기 통일부장관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과 면담을 한다고 해서 의아했죠. 다들 내심 걱정하면서도 최근 남북 갈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위로하려는 차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통보했고 2~3시간 뒤 전격 발표했습니다. 원부자재라도 갖고 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고요.“(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잊혀졌던 개성공단 사태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대통령 탄핵까지 부른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씨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지난달말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달라며 최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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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라는 키워드가 개성공단 사태의 미스터리마저 풀어줄 것인가. 청와대와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결정했다“며 펄쩍 뛰고 있다. 국민들이나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할 순 없어도 무자격 비선실세가 아니라 차라리 관련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이었기를 바랄 것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허탈감과 좌절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최순실 사태의 추이는 그런 기대마저 외면할 것 같은 불안감을 던져준다.
개성공단 가동중단이 두고두고 아쉬운 것은 단지 입주기업들의 물질적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개성공단의 아픈 기억이 ‘정부의 말을 믿고 남북경협에 나섰다가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부정적 학습효과로 이어져 향후 경협의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다.
더구나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대가 열린다.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한다면 끔찍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인물 말이다.
한반도 주변정세가 불안정할수록 우리 만의 안전판 확보는 필수적이다. 난관이 많겠지만,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개성공단만한 대안도 없다. 개성공단은 아직도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