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운임, 선복과잉, 비싼 용선료, 물동량 감소. "하나만 죽으면 다 살 것"이라고 버티던 작년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희생양은 한진해운이 됐다.
해운은 '수출 대한민국'의 동맥이자 기간산업이지만, 한진해운은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공적 자금은 받지 않았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돈을 더 붓는다 한들 해외 용선주로만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산업은행은 조양호 한진 회장에 대해 "대마불사를 믿고 채권단에 뻣뻣하다"고 평가했다. 직원 수는 고작 1400여명이어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갖가지 논리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금융위-산은은 15위 선사인현대상선(23,150원 ▲450 +1.98%)을 선택했다. 국적 선사 하나 살아남았으니 "너라도 잘돼야 한다"고 했다.
때마침 1위 선사 머스크가 한국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진해운이 쓰던 부산신항만 3부두는 머스크 물량을 받기로 했다. 아태 홍보 담당자는 서울에 있는 기자들에게 연락해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내역 등 한국 경제에 기여한 공(?)을 부각시켰다. 이제 죽은 애는 잊어버리고 살아남은 애들끼리 잘해보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런데 당장 한진의 부재가 느껴진다. 수출 기업들은 "해외 선사는 화물을 싣고 나르기만 할 뿐 화주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상선만으로 화주가 원하는 노선과 시간대에 슬롯(화물을 싣는 공간)을 잡기 어렵고, 운임 결정에서 불리해졌다고 한다. 한 화물기사는 "서울-부산을 오가는 일감이 확 줄었다"고 했다.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최근 현대상선이 "세계 8위 선사로 크려면 2022년까지 9조9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AT커니 보고서를 산은에 보고했고, 산은은 이를 검토하고 있다. 5월말까지 8500억원을 지원받은 지 2개월만이다.
자그마치 9조9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5조6000억원은 대형 선박 발주에 책정돼 역시 산은을 대주주로 둔대우조선해양(149,900원 ▲9,300 +6.61%)을 측면 지원하는 데 쓰일 것이란 이야기까지 들린다.
이걸 두고 누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한진해운 지원부터 의지를 보였다면 7위 선사가 파산하고 15위 선사가 국민 세금 10조원 가까이 지원해달라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사기업에 정부가 돈을 지원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현대상선도 작년 8월 산은이 대주주가 되기 전까지 사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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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9000억원은 우리 세금이다.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고, 그 돈을 투입해 과거 한진해운 이상의 선사가 된다는 '확신'까지 있어야 자금 지원이 정당해진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채무 재조정에 성공해 부채비율을 2007%에서 235%까지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대우조선해양과 다르다고 믿고 싶다. 수조원의 공적 자금을 수혈받았지만, '도덕적 해이'에 그대로 빨려간 대우조선해양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