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이완구 전 총리와 기자 4명의 서울 통의동 돼지두루치기식당 식사 중 대화
*2019년 9월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발전사회학' 강의 내용
*2020년 2월 이동재 전 채널A기자와 후배 B기자 및 한동훈 검사장과의 부산고검 사무실 대화
세 사건엔 공통점이 있다. 대화참여자 혹은 상대방의 '동의'없이 녹음된 음성이 나중에 공개돼 소송으로 연결되고 제법 큰 스캔들로 확대됐단 점이다. 녹음을 한 이가 20대였다는 점도 같다.
최근 유난히 '녹취'가 사건의 발화점으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류석춘 교수 사건처럼 대학 강의 내용이 학생에 의해 녹음된 뒤 '성희롱', '모욕',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고발 사건으로 비화된 것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음성이 쉽게 녹음되고 있다. 별도의 녹음기 없이도 노트북이나 스마트패드로 녹음이 쉬워졌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10여년 전부턴 핸드폰으로 강의나 일상을 녹음하는 이들이 많다. 대체로 연령대로는 90년대생들이 '스마트한 녹음'세대다.
과거엔 사적 영역을 '녹음'한다는 건 '결례'였다.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거의 없던 일이었다. 대화 등 사적 영역을 '녹음'한다는 건 민형사 사건을 위한 '증거 수집용' 등 음흉하거나 부정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양해받지 않은 '녹음'에 대해 90년대생들은 거부감이 그 이전세대보다 확실히 덜하다.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찍고 녹화하는 게 익숙해서인 듯 하다.
스마트하지 못한 '라떼세대'들은 이런 상황이 두렵고 걱정도 앞선다. 습관화된 '녹음'이 다툼의 새로운 시작점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말'과 '대화'로 일을 하는 직업군에겐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교수를 예로 들자면 '자기검열'에 의해 '위안부'나 '일본불매' 혹은 '젠더갈등' 같은 '논쟁적 이슈'를 피하게 된다.
'마약사범'들은 흔히 '가장 의리 없는 범죄자'들로 불린다. '황하나' 관련 사건에서 보듯 그들은 검거될 경우 '플리바게닝'에 써 먹기 위해 마약으로 엮인 상대방과의 대화나 통화를 수시로 '몰래' 녹음한다. 수사기관에 경쟁하듯 제출해 선처를 받기 위해서다.
'녹음'을 가장 즐겨하는 마약사범들이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에 '녹음'에 병적으로 집착한단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대법원장을 불신해 대화를 녹음하는 부장판사처럼 '신뢰'가 무너지면 '녹음'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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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일상화된 사회는 불신의 일상화로 갈 수 밖에 없다. 구성원들이 서로 몰래 녹음하는 사회라면 지속가능성이 없다.
복습을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던 강의 녹음도 의도치않게 대학 사회를 망가트릴 수 있다. 각 대학에선 초짜 강사나 교수에겐 모든 강의가 녹음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라고 주의를 준다. 어느 순간 강의는 교수와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아니라 '자기검열'과 '감시'의 시공간이 됐다.
대화에 참여한 자에 의한 녹음은 적법하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의 녹음은 불법으로 인정된다. 대법원은 2017년 3월 선고된 '2016도19843'사건에서 '대화'의 의미를 "원칙적으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행위"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항상 간단하진 않다. 교수에 의한 일방적인 강의도 여기에 포함되는 지에 대해선 의견이 나뉠 수도 있다.
사적 영역에서의 '녹음'은 불법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부적절하단 평가를 받는다. 사적 대화를 녹음해 공적 영역으로 옮긴다면 일상은 보호받지 못한다.

녹음은 분명 순기능도 있다. 그런데 정작 녹음이 필요한데도 아직 '금지'돼 있는 곳도 있다. 바로 법조인들의 일터인 '법정'이다.
실은 법정 녹음·녹화는 지금도 되고 있다. 하지만 법원 공판조서를 위한 '내부용'이다. 시행된지 5년이 넘은 법정녹음제로 법원에 의한 공식적인 녹음이 되고 있지만 방청객에 의한 녹음은 금지돼 있다.
금지하는 근거도 빈약하다. 법원조직법엔 '녹화·촬영·중계방송'을 재판장 허가 없이 못한다고 돼 있다. '녹음'에 대해선 별도 언급이 없다. 그런데 법원은 자신들이 만든 '대법원규칙'인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에 은근슬쩍 '재판장의 허가없이 녹음, 녹화, 촬영, 중계방송 등을 하는 자'를 퇴정시킬 수 있도록 정해 뒀다.
꼼수다. 국회가 제·개정권을 갖고 있는 '법률'에선 '녹음'이 금지사항에서 빠져 있는데도 법원이 자신들이 제·개정권을 갖는 규칙에 '녹음'까지 포함해 놓았다.
스마트한 '녹음'세대인 90년대생들에게 부탁드린다. 헌법에 보장된 '공개 재판' 원칙을 좀 더 본질적으로 국민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법정 녹음 투쟁'에 나서 주길 요청드린다. 고압적인 막말 판사, 불성실한 검사, 성의없는 변호사가 퇴출될 수 있으려면 '법정 감시'가 필요하다.
사적 영역의 녹음은 되도록 자제하는 대신, 공적 영역인 '법정'을 좀 더 투명하게 하는 데 90년대생들의 능력발휘가 필요해보인다.
법정 '녹음'을 '누구나' 할 수 있는 투명하고 스마트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과 활약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