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코로나19 백신 관련 '지라시(미확인 정보)'가 시중에 나돌았다. 이달 초 정부가 개최하는 '글로벌 백신 허브화' 추진 관련 행사 중 한 제약사가 얀센 백신을 위탁생산하는 업무협약식이 포함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작성한 초안으로 보인 문건이었던데다 실제 이 제약사와 얀센의 위탁생산 관련 협의가 진행중인 점도 알려진 상태여서 신빙성을 더했다.
하지만 실제 행사는 지라시에서 거론된 행사들 중 위탁생산 건 만 빠진 채 진행됐다. 행사와 지라시 내용이 상당부분 일치했기에 지라시가 아닌 '초안 유출'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고 위탁생산 부분만 빠진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백신 개발사로서 협의 칼자루를 쥔 얀센의 '도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건에 오른 내용은 결국 우리의 '희망사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해프닝은 '탈 코로나'를 위해 정부와 기업 모두 백신확보에 발벗고 뛴 지난 8개월이 남긴 씁쓸한 단면이다. 백신 확보의 고비마다 원천기술을 가진 해외 제약사의 높은 벽에 부딪쳐야 했고 원천기술이 빠진 허브로서의 한계를 번번이 확인했다. 지난 8월 빚어진 모더나 공급차질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모더나측 문제로 당초 배정된 물량을 우리가 원하는 기한 내 상당부분 받지 못하게 됐지만 '계약위반' 사항은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됐었다. 계약서상 구체적인 공급 일정을 명시하지 않고 협의를 통해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칼자루를 쥔 모더나에 유리한 계약이었다.
미국 소비자 단체 퍼블릭시티즌이 입수한 화이자와 세계 각국의 백신 공급 비밀계약 내용은 모더나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다.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 백신 대금을 못주면 일부 국영기업도 압류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충격을 줬다. 한국의 계약은 퍼블릭시티즌의 공개 사항에 없어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화이자와 공정한 계약을 맺지는 않았으리라는 유추는 가능하다.
국민 접종 완료율이 80%에 육박하고 백신이 남아 폐기하거나 타국에 공여하는 지금, 8개월간의 '백신 열풍'은 사그라들고 있다. 단기간에 백신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세계 최고수준의 접종률을 기록한 저력이 확인됐지만 이보다 더 기억돼야 하는 점은 '칼자루'는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