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카드사태 '데자뷔'라고?

[우보세] 카드사태 '데자뷔'라고?

오상헌 기자
2021.11.19 03:07

가계부채발(發) 경고음을 울리는 금융당국이 요새 부쩍 즐겨 사용하는 단어가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다. 부채로 쌓아 올린 경제 구조에 복합적인 내외부 충격과 악재가 일시에 몰려드는 위기 상황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금융 당국자들이 퍼펙트스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묘한 기시감(데자뷔)이 든다"고 예로 드는 게 바로 2003년 카드사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들어선 국민의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2001년 부동산 규제를 풀고 가계대출을 사실상 조장했다. 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수가 4.6개에 달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해 줬다. 2002년 경제성장률이 7%까지 올라갔지만 이듬해엔 3.1%로 추락했다. 카드 빚을 못 갚은 34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하고 카드사들이 부도 위기가 처했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와 이라크 전쟁, 북핵 실험 등 내외부 악재도 더해졌다.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는 복합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20년의 시차를 넘어 데자뷔를 말하는 건 그럴 만한 유사점이 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넘치는 유동성 탓에 가계부채는 이미 1800조원을 넘어 빠르게 늘고 있다. 카드대란 당시 "빚 내 소비하라"던 소비 진작 정책은 박근혜 정부 때 "빚 내 집사라"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변주돼 집값 폭등의 단초가 됐다. 2030세대(20~30세)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 내서 투자) 유행은 소득이 적고 빚 갚을 능력이 없던 젊은 세대들이 신용카드로 당겨 쓰고, 돌려 막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시장 상황이나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이후 초저금리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금리 인상기가 도래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과 기준금리 인상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예상하지 못 했던 크고 작은 충격까지 더해진다면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부실화가 가속화하고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해 대형 쓰나미가 밀려 올 거라고 보는 정부 당국자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던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지난 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럴 개연성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한 걸 보면 말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아주 나빠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자는 취지로 보인다"며 "그렇게 될 것이란 예상을 얘기한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20여년 전과 지금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과 위기 관리 능력이 크게 다르다는 자신감으로도 읽힌다.

더 솔직해 진다면 '총량 규제'라는 충격요법과 극약 처방을 쓰기 위한 구실로 삼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약이 무효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퍼펙트스톰' 운운한 것일 뿐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대출 중단과 대출금리 인상에 반발하는 수요자들의 아우성에도 거칠고 투박한 총량 규제를 지속하겠다고 한다. 확실한 공급 대책없이 돈줄만 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오히려 금융시장 부작용을 양산하는 것임을 금융당국이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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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 기자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 고종석, 코드훔치기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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