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대장동 사업계약서에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삭제된 경위에 대해 검찰과 경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여러차례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그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가지만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배경이 됐음은 짐작할 수 있다.
수사를 받는 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장동 사건만 하더라도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김 처장에 앞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사기관에 불려갔다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 신분일지라도 조사 도중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극도의 모멸감을 갖는다. 변호사 선임 등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시선 등으로 일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 구성원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까지 사적인 통화 내역이나 계좌, 동선이 그야말로 '탈탈' 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곧 형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자가 벌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거나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다. 그들이 '황폐해진 영혼'을 추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수사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제기된 의혹에 진실을 밝히는 것은 수사기관의 임무다. 그 수사는 '무죄 추정'의 상태에서 기본권에 직접적으로 제약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절도있게 이뤄져야 한다. 매년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고소·고발만 90만 건, 옆나라 일본의 수십배에 이른다. '고소·고발 공화국'으로 불리는 현실을 생각하면 절제된 수사권 행사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절제'보다는 '남용'이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과거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면서 형사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가 문제가 됐다. 스폰서 검사, 전관예우 등은 잊을만 하면 튀어나온 검찰의 부조리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멀게는 문민정부부터 논의를 시작해 진통 끝에 출범한 독립적인 수사기관이다. 그런 공수처가 출범한지 1년이 채 안돼 수사권 남용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과 경찰, 야당을 출입하는 기자뿐 아니라 야당 국회의원까지 방대한 규모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김진욱 처장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 기자들에 대해서는 통화내역까지 조회한 것으로 의심을 받는다. 언론인은 공직자도 아니고, 법률상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공수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소극적인 해명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민간인 사찰 의혹을 덮기는 역부족이다.
공수처의 탄생은 검찰 중심의 형사사법체계가 무너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검찰이 갖고 있던 권한의 일부를 공수처에 넘겨줌으로써 억울한 형사피해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고 사법체계가 불편부당하게 작동하게 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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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는 그에 걸맞게 스스로 '시행착오'라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는 자세를 가져야 했다. 수사권은 특정 정파도, 공수처 자체도 아니고 국민을 위해 사용돼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공수처는 마치 망치를 쥔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가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수사권이라는 망치를 무절제하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언론이고 야당 국회의원이고 할 것 없이 모두를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편견과 예단에 사로잡힐 때 폭주는 시작된다. 수사권을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할 때 그 칼에 베어나가는 것은 범죄에 국한한지 않는다. 단순히 억울한 형사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을 넘어 국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키고 정치권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수사권이 절제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결국 모든 국민에게 귀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