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대전 소재 한 스타트업 대표는 창업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서울로 가야 할까요." 사업차 만나는 고객사나 투자자마다 "서울엔 언제 갈 거냐. 갈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인들조차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아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창업을 해보니 지방기업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것을 실감했죠. 지방에 있다고 하면 우선 돈이 없거나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고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비대면 경제로 지역간, 국가간 경계가 사라져가지만 우리나라의 지역 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인재도, 자본도 수도권에 몰리는 쏠림현상이 갈수록 심화한다. 수도권 쏠림현상은 창업분야도 마찬가지다. '제2벤처붐'이 불지만 그 바람과 열기는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히 사그라든다. '벤처 대부'로 불리는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수도권 일극주의로 미래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진단할 정도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역별 벤처투자 자료를 보면 창업시장의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벤처투자는 해당 지역의 창업 활성화 여부를 따지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액은 7조680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중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벤처투자액은 5조7672억원으로 전체의 75.1%를 차지했다. 전년(72.0%) 대비 3.1%포인트 오른 수치다. 수도권 벤처투자 비중은 2017년 75.7%에서 2019년 71.8%까지 낮아졌으나 2000년 72%로 다시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5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반면 같은 기간 비수도권 벤처투자 비중은 16.7%로 전년 대비 3.4%포인트 하락했다. 비수도권 벤처투자액은 1조2795억원으로 경기도(1조3071억원) 한 곳보다 적다. 특히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의 벤처투자액은 5659억원으로 해외기업 투자액(6335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벤처투자가 감소한 지역도 있다. 제주와 울산의 밴처투자액은 375억원, 343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0.8%, 0.6% 감소했다. 제주의 경우 3년 연속 내리막이다. 제2벤처붐에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창업시장의 온도차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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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가 지방을 대표할 수 있는 좋은 기업들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다. 창업은 그 시작이다. 비수도권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고착화한 벤처투자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의 인재가 자금조달 걱정 없이 창업하고 회사를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기부가 최근 4700억원 규모의 지방전용펀드를 조성해 비수도권 벤처·스타트업에 집중투자키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런 조치가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
아울러 제2벤처붐으로 민간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등 핵심 투자자들이 비수도권의 유망 벤처·스타트업 발굴·투자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내 벤처캐피탈과 액셀러레이터 10곳 중 7곳 이상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렇다 보니 지방 창업가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서울을 오가기 일쑤다. 벤처투자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벤처투자의 마중물인 모태펀드를 출자할 때 지방 투자의 성과가 우수한 벤처캐피탈이나 액셀러레이터에 가산점을 주거나 아예 모태펀드 출자조건에 지방투자비중을 일정부분 의무화하는 방안을 도입해 수도권에만 몰린 물꼬를 비수도권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마중물이란 원래 그럴 때 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