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래 연방준비제도는 주식시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건넨 자본시장의 구세주였다. 주가지수가 과도하게 급락해 하락 추세가 심화할 때면 어김없이 금리를 인하하고 통화량을 늘려 큰 손실로부터 투자자들을 지켜냈다.
그간 수십 년간 미국 주식시장은 연준이라는 든든한 보호막 아래에서 장기 호황을 누려왔다. 401k로 대표되는 연기금 펀드가 매달 엄청난 규모의 주식을 신규로 매수하면서 수급의 강물에 마르지 않는 지류의 기능을 했다면, 연준은 수급의 이탈을 막는 큰 댐의 역할을 해왔다.
하락장에서 손실을 막아주는 연준의 역할은 풋옵션에 비견된다. 풋옵션은 보유자가 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도록 보장한다. 따라서 주가가 그 가격 아래로 하락하더라도 투자자는 손실을 면하게 된다. 연준도 마찬가지였다. 일정 수준을 넘어 주가가 하락하면 시장에 개입했다.
이런 연준의 시장 방어 기능을 '연준 풋'이라 한다. 연준 풋의 기능이 가장 돋보인 것이 지난 2020년 3월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단 한 달 동안 주가지수가 30%가 넘게 하락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대공황 당시의 공포가 퍼졌다.
그러자 연준은 3월 3일과 15일 두 차례 비상회의를 열어 1.5%가 넘던 정책금리를 0% 가까이로 인하했다. 그 효과는 컸다. 그 해 8월 주가지수는 전고점을 넘었고 작년 말까지 전고점에서 40% 더 올랐다. 이를 시장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이름을 따 '파월 풋'이라 한다.
부동산 버블 붕괴로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2008년 9월도 마찬가지였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하자 주가지수는 수개월만에 42%나 폭락했다. 이에 연준은 역사상 처음으로 정책금리를 0%선으로 내리고 1조 달러가 넘는 양적완화(QE)를 시행했다.
그 덕택에 미국 주가지수는 2011년 봄에 2008년 수준을 회복했고 그 이후 몇 년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당시 연준을 이끌던 벤 버냉키 의장이 주도한 양적완화가 가져온 이 시기의 주가 회복은 '버냉키 풋'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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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준 풋을 처음 시작한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었다. 1982년 이후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에 힘입어 견조한 상승세를 보이던 미국 주식시장은 1987년 10월 돌연 급락세를 보였다. 블랙 먼데이라 불리는 10월 19일에는 하루에만 20%가 넘게 폭락했다.
이에 그린스펀 의장은 그간의 통화 긴축에서 벗어나 이듬해 3월까지 1% 가까이 금리를 인하했다. 그 이후에도 그린스펀은 18년에 걸친 재임 기간 동안 걸프전쟁, 멕시코-아시아 금융위기, 닷컴 버블 붕괴와 9·11 테러 등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한편, 미국의 물가 급등으로 최근 연준이 강력한 긴축 모드로 돌아서면서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과거 고비마다 위력을 발휘했던 '그린스펀 풋'이 다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준 풋을 언급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다르다.

우선, 그린스펀이 재임했던 1987년 이후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위기에 크게 노출된 적이 없다. 경제 펀더멘털을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이 없으니 연준은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러한 저물가의 축복은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날 때마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린 그린스펀의 혜안 덕택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인플레이션으로 나라가 망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1970년대 후반과 같은 수준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물가가 잡히지 않는 한 연준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그만둘 수 없다. 이번에는 주식시장이 급락하더라도 연준 풋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