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군사대국의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있던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아직 남북이 대치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도 대규모 전쟁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스산한 자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패권국간 전쟁에 관해 잘 알려진 이론이 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주장한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새로 패권을 추구하는 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의 패권다툼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이제는 정치학도가 아니더라도 미중 경쟁이 격화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가 됐다.
충돌하는 두 패권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최근 새로운 주장이 제시됐다. 할 브랜즈는 패권 도전국이 실제로 전쟁을 선택하는 시점은 국력이 정점에 이른 후 쇠퇴하는 과정에서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론은 '피크 파워 함정'이라고 부른다.(2021년 9월과 2022년 4월 포린폴리시 기고.).
할 브랜즈의 새로운 주장은 2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하나는 신구 강대국의 대결구도 자체만으로 전쟁이 발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신흥국의 무력도발이 현실화하는 시점은 상승기나 정점이 아니라 오히려 쇠퇴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신흥 강대국의 힘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에는 강대국간 치명적 대결은 뒤로 미뤄진다. 그러다 국내외적 도전으로 국력이 정점을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돌변한다. 그간 무한한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임박한 위험으로 바뀌게 된다. '너무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대담하게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급속한 상승기에 축적된 군사적·경제적 힘은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나 급속한 쇠퇴에서 오는 두려움은 조급하고 공격적인 확장을 부추기는 강한 동기를 제공한다.
할 브랜즈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은 신흥 강대국이 '영광'으로 가는 길이 막히려 한다는 판단에 이를 때 일어났다고 한다. 제국주의 독일과 일본이 그 교과서적 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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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파워 함정'은 중국이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시기에 미중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시점은 '기회의 창'이 완전히 차단돼 너무 늦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때라고 예측한다.
'피크 파워 함정'은 신냉전 시대에 대한 또 다른 통찰력을 제공하지만 우리에겐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운 논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안보지형과 국제경제 환경이 모두 급변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이후 대서양 동맹과 인도·태평양 동맹이 연계되면서 새로운 냉전 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동시에 그동안 국제경제 문제를 조율해온 전통적 글로벌 공조체제가 사라지고 있어 공급망 교란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새로운 양대 진영이 '피크 파워 함정'에 빠질 때 한반도도 그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이제 자명해졌다. 지금 대응전략을 새롭게 다듬어야 하는 중대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