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라면값 50원 내려 행복해졌나요

[우보세] 라면값 50원 내려 행복해졌나요

유엄식 기자
2023.11.29 05:1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라면 1팩 사면 겨우 200원~300원 정도인데 이게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최근 지인과의 저녁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정부가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밀가루 제조사부터 시작해 라면, 과자, 빵 등 다양한 식품 기업들을 만나 얻어낸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인 '라면 출고가 50원 인하'에 대한 촌평이었다.

껌 한 통도 3000원이 넘는 시대다. 라면값을 고작 50원 내린 결론은 그동안 정부가 노력한 점을 고려해도 미흡한 수준이긴 하다. 출고가를 5% 이상 내린 라면 업체 입장에선 연간 수 백억원대 영업이익 손실을 감내한 '통 큰' 결정이었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도는 낮다.

더구나 음식점에서 파는 라면값은 요지부동이다. 3~4년엔 비싸게 받는 가게도 4000원이었는데 요즘엔 5000원 이상 받는 곳도 적지 않다. 라면 출고가 인하 이후 가격을 내렸다는 음식점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전기, 가스, 수도 등 각종 공과금과 인건비 부담이 늘어 메뉴 가격을 더 올려야 영업할 수 있다는 아우성만 들린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효과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전보다 조금 둔화했다는 것. 올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로 2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 숫자도 라면값 인하가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물가 지표 가중치가 가장 높은 석유류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 컸다. 7월 석유류 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25.9% 내렸다.

오랜 기간 경제부처에 몸담은 베테랑 공무원들은 물가 통계가 국제 유가 흐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라면, 빵, 과자 출고가를 눌러 몇 개월간 가공식품 물가 지표를 관리하더라도 응축된 가격 인상 압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할 것이란 경험칙도 있다. 최근 일부 업체들이 비판을 감수하면서 제품 가격은 동결하되,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을 선택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생활 밀접 품목 52개를 선정했다. 당시 국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에선 '라면값은 A 과장이, 빵값은 B 과장이 맡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13년이 지난 현 정부에서도 최근 이런 표현이 회자한다. 주무 부처가 기재부에서 농림축산식품부로 달라졌을 뿐이다.

정책 방식이 비슷한 만큼 결론도 어느 정도 예상된다.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정부가 아무리 라면, 빵 가격을 못 올리게 막아도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국제 유가가 낮아지면 라면과 빵 가격이 조금 올라도 물가 상승률은 2%대 수준으로 관리될 가능성이 크다.

시대가 바뀌었다. "정부가 노력하면 물가가 안정된다"며 '라면 담당, 빵 담당'을 정하는 진부한 방식보다 주요 원자재의 안정적인 수급을 지원해 기업의 원가 부담을 낮추고 각종 규제를 재검토해서 공산품 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본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유엄식 기자

머니투데이 산업2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