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직장 내 장미의 전쟁은 계속될까

[유효상 칼럼] 왜 직장 내 장미의 전쟁은 계속될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5.06.10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오래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흥행에 성공한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장미의 전쟁(The War of the Roses)'의 결말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녀가 성공하여 상당한 부도 이루고 아이 둘을 키우며 행복한 생활을 하다, 어느 날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싸움은 점점 커지고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둘 다 부부 싸움 중에 사고로 사망한다는 다소 황당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일반적으로 부부갈등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배우자의 외도나 금전적인 문제와 같이 '명확한 사유'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부부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이러한 장미의 전쟁은 비단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직장 내에서도 남녀 사이에 다양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직에서 남녀가 함께 일하면서 양쪽 모두 성공적인 성과를 내고 싶어 하지만 사사건건이 부딪히며 오히려 역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할 뿐,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이유는 알지 못한 채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원제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로 너무나 유명한 심리학자 존 그레이 박사와 하버드대 심리학 박사인 바바라 애니스가 제시한 '블라인드 스폿(blind spot)' 개념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은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60여 곳의 남녀 임원들을 인터뷰하고 10만여 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남녀 모두 '이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직장 내 다양한 갈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남녀 간 블라인드 스폿(blind spot)'으로 명명했다.

1970년대 초 양성평등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남녀는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조직에서는 맹목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다루려 했다. 그러나 애니스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남녀는 일 처리 방식, 의사소통, 문제 해결, 의사 결정, 갈등 해결, 업무 우선순위 선정, 감정 처리, 스트레스 해소 방식 등 8개의 블라인드 스폿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The 8 Blind Spots Between Men and Women in Business).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남성들은 업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결과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의사결정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조직 내 블라인드 스폿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을 오해하고 서로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녀의 다른 점은 능력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며,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갖고 있기에 근본적으로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각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서로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성별 이해 지능(Gender Intelligence)'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니스 박사팀과는 달리 미국 아이오와대 심리학과 즐라탄 크리전 교수는 이러한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클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부풀려진 결과물이며 남녀의 심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을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Journal of American Psychologist)'에 발표했다.

또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신경과학과 다프나 조엘 교수도 그의 저서 '젠더 모자이크(원제: Gender Mosaic)'에서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시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남성과 여성은 결코 화성, 금성으로 구분할 수 없으며 인간은 모두 지구라는 같은 별에서 왔다"고 했다. 성인 1400명의 MRI 검사 결과, 남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가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미국 로체스터대 신경과학 연구소, 백신 생물학 및 면역학 연구센터, 환경의학과, 의과학 교육센터, 시각 과학 연구센터 공동 연구팀은 뇌의 기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세 아교 세포 (microglia)'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내용을 생명 과학 학술지 '셀 리포츠(Cell Repots)'에 실었다.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비노드 메논 교수는 AI와 뇌의 활동을 판단하는 fMRI를 활용하여 남녀의 뇌 구조 패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가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메논 교수는 단지 뇌 영상만으로 남녀를 90% 이상 정확도로 판별해냈다. 이 연구결과는 오랫동안 논란이 된 '뇌 조직에 상당한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론에 힘을 싣게 했다.

의학계에서도 '화성 남자 금성 여자'가 화두다. 남녀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큰 만큼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도 이런 부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자들은 이를 '성차 의학(sex specific medicine)'이라는 학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남녀 갈등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특히 Z세대 남성과 여성 두 집단은 정치 성향은 물론 직장 생활, 결혼·출산 등의 생각 차이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심지어 외국 언론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은 젊은 남성과 여성이 갈라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다른 나라에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이 사회는 둘로 갈라졌다. 결혼율은 급락했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AI 시대에서는 무엇보다 다양성이 중요하다. 남녀 비율이 비슷한 조직에서 경영 성과가 더 우수하다는 결과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OECD 29개국 대상 '유리천장 지수'가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12년 이상 최하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리더스인덱스가 2025년 현재 30대 그룹 내 239개사의 사외이사 850명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여성 사외이사는 174명으로 20.4%에 불과하다. 2022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는 규정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여성 사외이사 의무화가 도입되었지만 대부분 최소 인원인 1명만 선임하고 있으며, 그나마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30대 그룹 중 20개 그룹에 여성 사내이사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AI 시대를 선도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경제 재도약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집단지성이 절실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조화로운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