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사 이래 종교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였다. 부족국가 시대엔 불가해한 자연현상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부족의 염원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구성원들이 안심하고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제사장들이 했다. 그 제사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삶에 축복을, 죽음에 안식을 보장하는 역할도 종교의 몫이었다. 때로는 그 종교의 세계관과 교리가 권력자의 의도나 목적에 맞지 않으면 탄압하고 어떤 정치는 종교의 권위를 업고 통치의 정당성을 얻기도 했다. 중국대륙에선 황제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불교를 배척해 수만 개의 사찰을 없애고 수십만 명의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켰다가 그들의 권력이 저물자 원상복귀하는 일도 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도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그야말로 인류사에 큰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며 이해하지 못해 신의 영역으로 묶어놓았던 것들의 빗장이 열리며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만큼 종교의 역할은 희미해져간다.
관심에서 멀어지니 관심을 끌고 싶은지 신자들의 정치화를 이끌어내는 일부 종교인이 있다.
인류사에서 종교의 역할이 컸던 만큼 그 폐해도 크기에 오늘날 정치와 종교는 가깝고도 먼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중국의 폐불 때도 불교의 본분을 잃지 않은 율종과 선종은 그것을 피해갔다.
종교가 세속의 일에 일정부분 관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종교가 세속 그 자체가 된다면 이미 그것은 종교라 할 수 없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특정 세력이나 종교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마침내는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의 정치집단, 혹은 한 국가가 이단적인 종교집단에 의해 잠식된다면 역사의 시계를 수백 년 되돌리는 일이 벌어진다.
종교는 세속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안식과 피안을 제공하는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혼란했던 고려사에 승려들이 본분으로 돌아가야 함을 설파하며 정혜결사를 이끌었던 보조국사는 한국 불교사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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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관습처럼 젖어 있는 온갖 신비주의와 미신과 같은 맹신을 벗고 빛나는 과거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세속의 때를 벗고 근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돈을 많이 벌려면 사업을 하고 정치를 하려면 정치에 입문하면 된다. 종교 지도자가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그들의 믿음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고 자신의 욕망이나 정치에 이용한다면 그는 지옥에 살면서 신자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사자와 같다. 나 또한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사바세계의 일들이 본래 그러하다고 무심하게 넘길 수 있으나 지나친 것은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또한 대승불교의 자비심이다. 가끔 말한다. 내 말에 지나치게 긍정하는 이에게 당신은 내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옛 스승들이 "내 말은 문지방 넘어가면서 잊어버려라" 했듯이 가장 옳은 말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말이다. 집착했던 관념에서 벗어나면 남는 것이 없고,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났다면 역시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진리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 또한 집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방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갈 땐 마음속에 그 무엇도 남기지 말고 평온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 살면서 그것에 물들지 않고 그 연못을 정화하며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연꽃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게 살다 간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다 가기를 바란다.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이 세상에 작은 여유와 미소를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렇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연꽃이 살아가는 방식이 연꽃엔 가장 세속적이듯 우리네 삶이 밝고 따스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세속적인 일이 되기를 발원한다. 요즘 지구 온난화의 피해가 심각한 것 같다. 쭈쭈바 물고 눈 감고 열 좀 식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