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유쾌한 샐러리맨

[김화진칼럼] 유쾌한 샐러리맨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2025.10.17 14:57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기업에 들어가려는 인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회사를 택해서 입사를 시도할 것인가다. 여러 가지를 따져 보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요소는 연봉일 것이다. 저 회사에 들어가면 나의 가치가 얼마로 평가 받을까. 연봉이 높은 회사를 선망하면서 자체 평가를 한 후에 지원할 회사를 결정한다.

그런데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상사, 근무환경 등 연봉이 정해진 다음에 발생하는 비금전적 요소들과 마주치게 된다. 금전적 보상은 고정되어 있어서 회사 생활에는 비금전적 가치가 큰 역할을 한다. 서울대 경영대 신재용 교수는 그 비금전적 요소를 '정서적 연봉'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정서적 연봉이 높은 회사는 사원의 이직률이 낮다고 한다.

피터 드러커가 '조직의 사회'라고 부른 사회가 탄생한 이래 회사는 정부와 군대 다음으로 중요하다. 19세기 후반에 기업이 급성장하고 그로부터 창출된 경제적 가치는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대개 기술자들이었던 회사 주인들은 갑자기 커져 버린 회사를 경영하고 관리해 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남의 회사를 위해 일할 사무직군 사람들이 뉴욕 마천루의 좁은 공간에 차곡차곡 채워졌고 대학들은 앞다투어 경영대학을 개설해 남의 회사를 운영할 인력을 양성했다. 사주들은 '회사원'이라고 불리게 된 남에게 회사를 맡기고 회사 밖에서 화려하고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다.

회사에서 관리직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를 헨리 포드 사후로 본다. 포드는 개인기로 큰 회사의 모든 것을 관리했고 회계를 포함한 경영 기법을 활용하지 않았던 마지막 기업인이다. 그런 포드를 대체한 상징적 인물이 GM의 알프레드 슬론이다.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현대적 대기업을 배출하기 시작했던 1960~70년대에는 다른 사람이 만든 회사에 들어가서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는 사무직군 사람을 '샐러리맨'이라고 불렀다.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쾌한 샐러리맨'이라는 라디오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샐러리맨들의 생활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회사원들은 많은 시간을 대개 10인 이내의 다른 회사원들과 함께 보낸다. '같은 부서' 사람들이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는지는 자신이 결정하지 않지만 매일 매일과 인생을 좌우한다. 부서 내에서의 일상은 협조와 성취, 동료애 같은 긍정적 요소들 외에 공포, 야심과 욕심, 경쟁, 위선, 증오 같은 감정에도 지배당한다. 권력투쟁과 파벌 형성의 비옥한 토양이다. '사내 정치'라는 말이 생겼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채널'도 생긴다. 어떤 드라마의 대사도 있다. "어떤 부서에 있었길래 얼굴이 그렇게 팍 삭았어?"

많은 회사원들이 출근과 상사와 동료를 겁낸다. 조지프 헬러가 1974년에 쓴 책은 회사를 창업자 회장에서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공포의 체인으로 묘사한다. 영화 '회사원'(2012)에서 소지섭은 "이제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일은 다르지만 그 대사는 뭇 회사원의 심정을 대변한다.

회사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날도 많다. 부서가 황폐한 곳이 되면 회사뿐 아니라 가족도 피폐하게 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직하지 못한 캐릭터의 탄생이다. 물론, 퇴근하면 자녀들에게 정직을 가르친다. 유명 드라마 '미생'의 대사가 있다. 퇴직한 회사원이 후배에게 하는 말이다. "거긴 전쟁터지? 회사 나오면 밖은 지옥이야." 쉽게 그만 둘 수도 없다.

회사원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은 최고의 보상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의사가 병원장이 되고, 기자가 사장이 된 후의 생활이 다르듯이 엔지니어가 생산관리 임원이 되고 심지어는 지주회사로 이동하는 것은 달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승진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고 가족들은 언제나 급여 인상을 고대하고 있다. 또, 승진은 회사원의 사회화를 강요한다. 기계와 서류가 아닌 회사 외부의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제 내가 책임지는 부서의 인원은 수백 명이다. 수백 명의 권력투쟁을 다루어야 하고 본인도 더 큰 권력투쟁에 내몰린다.

위로 올라갈수록 회사 일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일로 인생이 채워진다. 대기업 임원이 되면 친구를 만나도 회사 일과 무관하게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사가 인생의 사실상 전부다. '회장님'에게는 사업 능력 외에도 사회적 평판과 영향력이 중요해졌다. 신세대 오너들은 사업 외에도 부지불식간에 경영대학에서 배운 회사 표준 모델에 집착한다. 표준 모델은 회사에 대한 사회적인 기대와 요구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이다. 그 모델은 회사 최고경영자에게 보다 많은 사회적 자산을 요구한다. 사회적 자산은 상속되는 데 한계가 있어 회사 밖 활동에 쓰는 시간이 많아진다. 회사 안에서는 전문경영인이라고 불리는 회사원들의 역할이 커진다.

회사원 진화의 최근 계기는 실리콘 밸리다. 좁은 사무공간, 출퇴근, 부서 내 위계질서,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다툼 등등을 대거 없애 준 것이 애플과 구글이 상징하는 기업문화다. 19세기 말부터 형성되었던 고전적 회사 모델이 자유성을 본질로 하는 대학 문화와 융합되었다. 대학을 갓 나온 창업자들이 대거 성공한 것도 주효했다. 회사 경영에서 엔지니어 출신들이 다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새 조류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회사원을 다시 진화시켰다. 부서 내 사회적 생활은 물론이고 부서 생활 자체가 대폭 줄어들었다. 인간의 경쟁력에서 사회적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인싸'들의 전성시대가 저문다. ESG는 회사원들의 상호관계가 보다 수평적이고 원활한 소통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회사 조직이 거의 200년의 역사를 거쳐 이제 '포스트 실리콘 밸리' 모델로 재탄생할 것 같다. 정말로 유쾌한 샐러리맨의 시대가 와야겠다. 그런데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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