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정·투명 절차 위에 고준위 방폐장 세워야

[기고]공정·투명 절차 위에 고준위 방폐장 세워야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2026.02.27 05:40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에너지 이용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완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원자력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기술적 해법을 넘어 제도와 절차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부지 선정은 단순한 지질 조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다.

공공정책의 정당성은 '내용적 합리성' 못지않게 '절차적 합리성'을 만족해야 한다. 특히 갈등을 내포한 공공사업의 경우에는 절차적 합리성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적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탁월한 과학적 성과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신뢰는 'E=MC2'과 같은 공식이 아니다. 신뢰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제도와 절차를 마련하고 그것들을 투명하게 지키려는 과정이며 결과물이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은 철저하게 신뢰의 토대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정부가 마련 중인 '제3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과 '부지조사계획'은 제도적 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이에 따라 기술적 검토와 실행 기반 조성을 담당하고 있다. 법과 제도에 근거한 절차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장기 과제로서의 방폐물 관리가 사회적 신뢰 속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공단은 부지 조사와 관련해 과학성, 투명성, 단계적 접근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질학적 여건에 대한 객관적 검토를 통해 부적합 지역을 사전에 배제하고 문헌 조사와 현장 조사,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반 분석 등을 통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갈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확보되는 정보는 국민과 공유함으로써 정책 추진 과정 전반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 나가고자 한다.

최근 강원도 태백 지역에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부지가 선정되고 관련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URL은 고준위 방폐물이 반입되지 않는 연구 전용 시설로 우리나라 지질 조건에 적합한 처분 기술의 안전성을 장기간 검증하기 위한 기반 인프라다. 이는 실제 처분시설 건설 이전에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축적하는 준비 단계로서 기술적 신뢰를 차분히 쌓아가는 과정에 해당한다.

해외 사례 또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 뷔르 지역의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 '시제오(Cigéo)'의 추진 과정을 보면 국가 차원의 공공토론 제도를 운영하고 독립적인 공론화 기구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제도적으로 수렴해 왔다. 아울러 '가역성(Reversibility)' 원칙을 법률에 명시해 장기 사업에 대한 사회적 숙의와 유연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했다. 이는 스위스와 핀란드 등 부지선정에 성공한 모든 국가가 동일하다.

방폐물 관리 정책의 신뢰는 투명한 정보제공 외에도 지역사회와 전문가, 국민이 정책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절차적 정당성이 완성된다. 공단은 설명 중심의 소통을 넘어 정책 과정 전반에 대한 이해와 참여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소통 채널과 참여 구조를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장기 과제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위에서 추진될 때만이 사회적 신뢰를 축적할 수 있다. 민법 제681조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규정한다. 공단은 국가가 위임한 '선량한 관리자'답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다 높은 수준의 역할과 의무를 다짐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