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중동사태, '태만'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우보세] 중동사태, '태만'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세종=박광범 기자
2026.03.10 04: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9일 인천시 중구의 한 주유소 가격안내 전광판에 휘발유 소진으로 인한 매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제공=뉴시스
9일 인천시 중구의 한 주유소 가격안내 전광판에 휘발유 소진으로 인한 매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란혁명수비대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 우리 원유 운반선 7척이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였다. 이 중에는 한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에 맞먹는 200만 배럴을 실은 초대형 선박도 포함돼 있다.

중동사태는 실시간 피부로 전해진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IT) 가격은 전쟁 개시 직전 배럴당 65달러에서 수직상승해 120달러에 육박했다. 휘발유가격 리터당 2000원 돌파는 시간 문제다. 생활물가 전반에 적신호가 켜졌다.

물가 부담을 넘어서 산업 자체가 셧다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여천NCC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재료인 나프타 인도가 지연되자 에틸렌 등 주요 석유화학 제품 공급 중단 가능성을 고객사에 통보했다. 반도체 업체들도 카타르산 반도체 냉각용 헬륨가스 공급 차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코스피 하락률이 외부 경제에 취약한 우리 경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4일 사상 최대폭인 12% 하락한 데 이어 9일에도 6% 하락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기록하면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이상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9%포인트 이상 상승한다. 임금이 정체돼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스크루플레이션', 물가가 급등하는 와중에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에 외부 충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다. 대표적으로 당장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석유제품 가격에 빛의 속도로 반영하고 내릴 때는 거북걸음 하는 사례가 문제로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을 도입하는 등 대책을 마련한 이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추가 개선 방안을 미룬 '태만의 청구서'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날아든 것이다.

원유 공급선 다변화 역시 1970년대 1차 석유파동 때부터 유가 급등시 단골 대책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석유의 경우 중동산 의존도가 70%에 달한다. 당장 물류비용만을 고려한 근시안적 대책이 주요국 가운데 중동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숨겨진 위험까지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꼼꼼하게 마련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이번주 내 시행하고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담합이나 세금탈루 등 시장 교란, 불법적 행위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당장 급한 것은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전해지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비정상적으로 필요이상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을 저지하는 대책이겠지만,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인 대응책 마련을 미루는 것은 과거의 틀을 답습하겠다는 '항명'과 다르지 않다.

 /사진=박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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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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