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최고지도자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후계자로 선출한 건 외부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겠다는 정면 돌파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친미 정권 수립을 통해 전쟁의 출구를 찾으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회의는 이날 성명을 내고 "압도적인 표차로 세예드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 아야톨라를 신성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제3대 지도자로 임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모즈타바의 권력 세습은 군부와 종교 엘리트 및 실세 집단이 전쟁 위기 속에서 체제 수호를 위해 선택한 필연적 결과라고 분석한다. 특히 부친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순교자'로 추앙되는 상황에서 '순교자의 아들'이란 상징성은 모즈타바에게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는 평가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디나 에스판디아리 지정학·지경학 애널리스트는 "모즈타바를 선택한 건 체제의 연속성과 외부에 대한 반발을 동시에 보여주는 신호"라면서 "이는 그의 부친이 남긴 유산과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체제를 개편하려는 시도를 거부하겠단 뜻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북아프리카 책임자인 사남 바킬은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모즈타바는 부친 밑에서 쌓아온 긴밀한 인맥 덕분에 유력한 후계자 후보였다"면서 "그는 체제의 네트워크 안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으며 체제의 연속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내부 권력 집단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처럼 이란에서 최고지도자 제거 이후 친미 정권 수립을 기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모즈타바에 대해 "하찮은 인물"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란이 트럼프의 출구전략에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력이 충분하고 이란이 항복할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지만 전쟁 장기화 땐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 둔화와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 반발 등으로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날 국제유가는 2022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제 시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 쏠리고 있다. 강경하게 모즈타바 제거 작전에 돌입할지, 모즈타바의 행보를 지켜보며 새로운 타협점을 모색할지에 따라 전쟁의 향방이 갈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ABC 인터뷰에서 "이란의 차기 지도자는 미국의 승인 없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지만 이란의 공식 발표 이후 현재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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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최고지도자 발표 후 결속을 다지는 분위기다. 이란의 보복 작전을 총괄해온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성명을 내고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의 지휘에 전적으로 복종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충성을 약속했다. 이란 안보 수장인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도 새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이란 관영 매체들은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와 새 최고지도자 선출을 축하하는 모습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이 실제 민심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모즈타바의 권력 승계는 이슬람 공화국이 세습 통치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명분 중 하나는 세습 군주제를 끝내자는 것이었다. 또 모즈타바는 유럽 등에 막대한 자산을 빼돌려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한 걸로 알려졌다. 이는 검소한 종교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동떨어진 것으로, 경제난에 신음하는 이란 국민들의 반발을 키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