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현대, 남극에 짓다

[김화진칼럼]현대, 남극에 짓다

김화진 미시간대 석좌교수
2026.03.24 14:41

김화진 미시간대 석좌교수
김화진 미시간대 석좌교수

남극에도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있다. 필요도 이상하고 운영과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웰스파고가 설치한 것인데 인구 1000명인 맥머도기지에 있다. 맥머도는 총 70여 곳의 남극 기지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인데 여름철에는 4000명까지 늘어난다. ATM 두 기 중 한 기는 고장에 대비한 예비용이고 한 기만 작동한다. 그래서 두 기이지만 각각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ATM'으로 불린다.

사람이 남극에 가는 이유는 연구, 탐험, 그리고 관광이다. 서울에서 약 20시간 걸려서 순례길로 유명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닿는데 거기서 푼타아레나스로 가는 비행편이 있다. 3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런 다음에 군용기나 전세기를 타고 남극에 닿게 된다. 뉴질랜드를 경유할 수도 있다. 오클랜드에서 크라이스트처치에 간 후 군용 수송기로 간다. 크루즈 관광을 하려면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에서 출발, 드레이크해협을 지나 남극에 닿고 상륙할 수도 있다. 비글해협 중간에 자리 잡은 우수아이아는 인구 5만 명이 사는 지구 최남단의 도시다.

한국은 1980년대 들어 본격적인 남극 탐사와 연구에 뛰어들었다. 탐사와 연구를 하려면 우리 기지가 있어야 한다. 남미대륙과 가까워서 다국적 기지가 가장 많은 남극반도 끝부분 킹 조지섬의 바톤반도 서북해안에 세종과학기지가 있다. 1988년에 '현대'가 16개 동을 지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설계와 감리, 현대중공업이 170명의 기술진이 승선한 HHI-1200호로 건설자재와 장비의 운반, 현대건설이 시공을 각각 맡았다. HHI-1200호는 선체 길이 177.84m, 총중량 24,558톤의 대형 건설선이었다. 1200톤을 인양할 수 있는 크레인을 탑재했다. LA를 경유해 10만리를 항해했다.

세종기지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극지연구소가 운영한다. 기아 모하비와 현대 포터도 각 한 대가 운영된다. 기지 인근에는 식수원인 호수가 있는데 현대호로 불리다가 세종호로 바뀌었다. 2014년 2월에는 빅토리아랜드에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장보고과학기지를 하나 더 세우면서 남극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다. 장보고는 호주와 뉴질랜드 방면에 있다. 남미 방면의 세종과는 서로 거리가 멀다. 세종은 섬인데 다가 남미와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따뜻하지만 장보고는 남극 본토의 본격적인 극지다. 낮은 기온 때문에 주변에 다른 기지들이 없어서 외로운 곳이다. 장보고는 세종보다 공사도 더 어려웠다고 한다. 바람이 강하고 강설량이 많아 공사할 수 있는 날이 연간 65일이 채 되지 않았다. 발전기가 블리자드에 얼기도 했다. 이번에는 국내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활약했다.

토착민이 없는 남극대륙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가장 먼저 그 존재를 확신했고 19세기 후반에 최초의 상륙이 이루어졌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깃발을 꽂고 탐사기지를 세운 다음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륙의 크기가 너무 커서 다 할 수는 없고 필요도 없어서 일부씩 그렇게 해오다가 분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직 남극에 갈 만한 여유나 능력이 없는 국가들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남극은 심해저처럼 '인류공동유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의 남극 체제가 정립됐다. 앞으로 달과 화성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생길 것이다. 달에 대해서는 1979년에 이미 그런 내용의 '달 협정'이 체결됐다.

남극대륙은 1959년에 체결된 남극조약으로 2048년까지 중립지대다. 특히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1959년은 냉전시대였다. 영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칠레,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7개국이 그 전에 대륙 일부를 자기 땅이라고 각각 선포해 놓았는데 조약 때문에 그냥 조용히 있다. 남극조약 제4조가 조약은 이미 선포된 영유권을 부인하는 근거로는 쓸 수 없다고 일종의 기득권 구제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도 일부 지역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노이슈바벤란트라는 이름까지 붙인 적이 있지만 오늘날의 독일은 조용하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점은 싫으면서도 남극은 스페인이 1534년에 처음 영유권을 주장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극에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워서 관심과 욕심도 가장 큰 것 같다.

남극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다. 국적 결정에 해당국 영유권 주장이 참고가 될 것이다. 오늘도 평화로운 남극이지만 사이가 별로인 나라 간 신경전도 벌어진다고 한다. '마리 버드 랜드'라는 지역은 아무도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무주지인데 미국이 공을 들인 곳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다. 한국이 북극에는 연고를 만들 수 없지만 남극은 다르다. 고군분투하는 두 기지의 한국팀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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