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 수출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경계가 함께 한다. 4월까지 반도체 수출은 148% 늘었고, 전체 수출도 41% 증가했다. 금년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1.7%로 반등한 데에도 반도체의 힘이 컸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숨통을 틔웠다.
그러나 온도 차도 분명하다. 미·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자동차·철강 등 일부 품목은 수출이 감소했다. 내수 회복도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반도체 홀로 달리는 호황이라고 부른다. 일정 부분 타당한 우려다. 다만 반도체를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대전환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세계 경제에서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니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전력망을 함께 움직이는 거대 인프라의 핵심이다. 특히 AI 패러다임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장될수록 데이터 처리 대역폭과 전력 효율을 좌우하는 고성능 메모리의 위상은 더욱 커진다.
반도체 호황은 수출 증가 이상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첫째, 거시경제의 안전판이다. 중동발 유가 충격 속에서도 무역흑자 확대는 에너지 수급과 외환시장 불안을 완충하고 대외 신인도를 지탱한다. 둘째, 경제안보의 지렛대다. 관세와 수출통제, 보조금이 외교의 언어가 된 시대에는 상대가 우리를 쉽게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불가결성이 곧 협상력이다. 셋째, 미래 산업의 공통 기반이다. 로봇, 자율주행, 방산, 스마트공장은 모두 고성능 칩 위에서 작동하며 제조업 전반의 생산성을 좌우한다. 넷째, 국내 생태계를 다시 묶는 힘이다. 팹 건설은 장비·소재·부품·패키징 동반 투자를 부르고, 한국의 폭넓은 제조 포트폴리오와 결합해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촉진한다.
물론 숫자가 주는 착시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최근 반도체 수출 폭증은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오른 칩플레이션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AI 수요가 구조적으로 강해도 반도체 사이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빅테크의 투자 속도가 조절되거나 가격 상승세가 멈추면 지금의 온기도 빠르게 식을 수 있다.
대만과 중국의 움직임도 지켜봐야 한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설계,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AI 서버 조립까지 이어지는 촘촘한 생태계를 구축해 회복 탄력성을 높였다. 중국은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의 흑자전환을 발판으로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경쟁의 다음 자리를 선점하는 일이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고성능 메모리와 양산 능력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빅테크의 AI 칩 설계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고, 메모리·패키징·서버·전력 효율을 묶어 한국이 반드시 필요한 협력 파트너가 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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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할도 자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늘 반도체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래의 인재, 시스템반도체, AI 인프라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반도체 호황이 한국 제조업 전반의 도약으로 이어지고, 한국은 세계 공급망을 잇는 핵심 연결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