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이며, 그 운영은 조합원을 향해야 한다는 명제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조합원이 마주한 현실은 이 정명(定命)과 늘 괴리를 보여왔다. 최근 농협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와 내부통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두고, 일각에서는 선거의 정치화, 비용 증가, 자율성 침해 등을 이유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면서, 개혁을 지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농협의 비위 문제는 작년 국정감사를 계기로 그 심각성이 드러났다. 이어진 농식품부의 특별감사를 시작으로 정부합동 특별감사단까지 꾸려졌고, 제도개선을 위한 외부 전문가 중심의 민관합동 농협개혁 추진단도 출범했다. 농협개혁 추진단은 관련된 모든 제도와 내용을 신중하고 심도있게 논의하여 개혁안을 마련했다.
당연히 최근 제기되는 우려와 비판의 논점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 '우려' 때문에 '개혁'을 멈출 수는 없다. 농협의 구조적 문제는 이미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려 사항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개혁 자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개혁안의 주요 취지와 방향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는 단순히 선거방식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농협 운영의 축을 '조합장'에서 '조합원'으로 옮기는 구조적 전환이다. 현 조합장 직선제는 1,110명의 조합장만이 회장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전체 조합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었고, 중앙회 운영구조가 특정 이해관계에 좌우될 위험이 컸다. 조합원 직선제는 그동안 농협 운영에 소외되었던 조합원의 권한을 분명히 해 협동조합의 대표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보다 충실히 반영하자는 취지이다.
일각에서는 조합원 직선제가 중앙회장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권한집중 문제는 선출방식 하나만으로 결정되기보다, 이를 견제하는 통제장치와 운영구조 전반에 의해 좌우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두고 보았을 때도, 현재 직선제로 선출하는 대통령의 권한이 과거 간선제로 뽑았던 대통령보다 더 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 뽑은 중앙회장에 대한 조합원의 감시는 훨씬 엄격할 것이고, 이것이 농협 운영을 민주화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내부통제 시스템 개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농협의 비위 문제와 '봐주기 감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9년 통합농협법 제정 당시에도 내부통제 문제를 우려하여 조합감사위원회가 도입되었으나, 당초 설계와 달리 동 위원회는 입법 과정에서 독립기구가 아닌 중앙회장 소속 기구로 편입되었다. 중앙회장의 영향력 아래에서 선출된 감사가 그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그 비리를 막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농협 감사위원회의 독립 법인화가 자율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정한 감시와 견제가 부재한 자율성은 결국 내부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뿐이다. 자율성은 신뢰에 기반한다.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기관일수록, 그 견제 장치를 외부에 두거나 의뢰함으로써, 공공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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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감사기구의 독립성 확보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의 전제 조건인 동시에 농협의 자율성을 든든한 토대에 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의 농협은 경제·금융·정책 등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농협으로서 농업·농촌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공적 기능이 다른 나라의 협동조합보다 크게 부여되어 있으므로, 정부의 감독권이 책임 있게 행사되도록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혁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분명히 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교한 설계를 병행하는 일이다. 농협개혁은 농협을 흔들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농협이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조합원과 농업인에게 책임을 다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추진단에서 제시된 개혁안이 국회 논의, 공론화를 거쳐 새로운 농협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