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양극화, AI 확산. 오늘날 세계 경제가 직면한 문제들은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글로벌 경제는 지금 '무엇을 성장으로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최근 기업들의 ESG 경영 강화와 각국 정부의 ESG 공시·탄소중립 정책 확대도 결국 이 질문과 연결된다.
전통적 자본주의는 시장가격을 중심으로 기업은 이윤을, 소비자는 효용을 극대화하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논리에 기반해 왔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활동은 시장가격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외부성을 만들어낸다. 기업의 생산 활동은 고용과 기술혁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지만 동시에 탄소배출과 환경오염 같은 부정적 영향도 남긴다.
ESG의 확산은 이런 외부성을 경제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수익만 중시했다면 이제는 환경·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경제의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영기법의 변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 자체가 진화하는 과정에 가깝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있다. 경제 시스템은 측정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GDP가 중요한 이유도 국가 경제를 하나의 숫자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둔 GDP만으로는 환경 훼손이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탄소배출 감축의 가치, 돌봄과 자원봉사 활동의 사회적 편익, 지역 공동체 유지 효과 등은 GDP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환경 비용과 사회적 기여를 함께 반영하는 '포괄적 성장지표'가 필요하다. 측정할 수 있어야 정책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고 자원배분 구조도 바뀔 수 있다. 결국 새로운 지표는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다.
이러한 변화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AI는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기존 노동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신규 채용 축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가 확산되면 고용구조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기술 발전의 과실은 커지는데 사회적 불안과 양극화가 확대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 보기 어렵다.
최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언급한 '사회적 가치 기반 일자리' 구상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AI 전환 과정에서 큰 수익을 얻는 영역에는 적절한 사회적 부담을 부과하고, 반대로 일자리를 잃은 개인이 돌봄·자원봉사·지역사회·NGO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포괄적 성장지표가 있다면 이런 공정전환(Just Transition)을 위한 재정지출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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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활동이 초래하는 환경적·사회적 외부성을 시장 시스템 속에 내부화하는 데 있다. 환경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개인과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통합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원배분을 해야 한다. 이제는 GDP를 넘어 통합적 가치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중심으로 경제시스템을 재설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