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도 감탄한 ‘김’의 뿌리를 찾아서

임금님도 감탄한 ‘김’의 뿌리를 찾아서

노혜진 기자
2026.03.05 09:39

17세기 ‘김’여익이 광양 태인도에서 양식, 역사관으로 재탄생

[편집자주] 보성 녹차, 영광 굴비, 횡성 한우…. 지역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이어져 내려온 식재료와 향토 음식이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먹거리는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 경제를 살린다. 우리 지역 경제를 살리는 농산물이나 명품 먹거리는 어떤 게 있는지 머니투데이 가 살펴본다.
김여익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진행하는 태인문화제에서 재래김 제조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모습/사진제공=광양시
김여익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진행하는 태인문화제에서 재래김 제조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모습/사진제공=광양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수산식품 가운데 가장 많이 수출되는 식품은 무엇일까? 바로 김이다.

한국 김은 전 세계 김 시장의 70% 이상 점유율을 자랑한다. 2023년 김 수출액은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선 이후 줄곧 증가하고 있다. 수산식품 단일 품목으로는 최초로 달성한 기록이다. 수산업계에서는 김을 가리켜 ‘검은 반도체’라고 부른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은 ‘연오랑과 세오녀’에도 등장하고 복리(福裏)라는 복쌈을 먹던 풍습 등으로 미루어볼 때 삼국시대부터 식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여러 사료에서 김은 해의, 해태로 불렸으며 강원도, 전라도 연안에서 진상됐다.

공물인 해의를 자연에서 채취한 것인지 양식을 한 것인지 생산 방법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김 양식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있는데 18세기 초반 광양현감을 지낸 허심이 쓴 김여익을 기린 비문에 17세기 중엽 지금의 광양제철소 자리인 태인도에서 시작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했던 김여익은 조정이 청과 굴욕적인 화의를 맺자 통탄하며 광양 태인도에 은둔했다. 당시 김여익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에 해초가 걸리는 모습을 보고 착안해, 1643년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의 특징을 활용한 ‘섶꽂이 양식법’을 인류 최초로 창안·보급했다. 김여익은 양식뿐 아니라 건조 방식도 연구했다. 김발 위에 김을 고르게 펴 말린 뒤 떼어내는 건조 방법을 개발해 주민들에게 전했고 태인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김 생산이 빠르게 확산됐다.

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배경에는 수라상에 오른 김의 맛에 감탄한 임금이 ‘광양의 김여익이 진상했다’는 말을 듣고, 그의 성을 따라 ‘김’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광양에서 재배된 김은 섬진강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태인도 하구의 자연환경에서 생산되어 맛과 향이 뛰어났다. 김 양식을 주로 했던 배알도·애기섬 일대는 광양제철소 입주 이전까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김 생산지였다.

재래김은 망덕산에 자생하는 시누대를 잘라 묶은 섶을 바닥물에 세워 김포자를 달라붙게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사진제공=광양시
재래김은 망덕산에 자생하는 시누대를 잘라 묶은 섶을 바닥물에 세워 김포자를 달라붙게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사진제공=광양시

◇김 산업의 출발점, ‘광양 김시식지’

맛으로 각광받던 광양 김은 광양제철소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남 광양의 김 양식은 사라졌지만 김여익의 흔적과 김 산업의 뿌리를 알리기 위한 광양 김시식지가 개관했다. 2011년 개관한 광양 김시식지는 김 역사관과 유물 전시관을 통해 김의 생산 과정과 산업적·문화적 의미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광양 김시식지에는 해은문, 영묘재, 역사관, 제기고, 유물전시관, 내삼문, 인호사가 있으며 이 중 역사관과 유물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사진제공=광양시
광양 김시식지에는 해은문, 영묘재, 역사관, 제기고, 유물전시관, 내삼문, 인호사가 있으며 이 중 역사관과 유물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사진제공=광양시

전시관에는 김여익이 김 양식을 시작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자연 채취 중심이던 김 생산이 체계적인 양식 산업으로 전환된 과정을 조명한다.

최근 K-콘텐츠와 K-푸드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광양 김시식지는 K-푸드 김의 뿌리를 간직한 역사적 현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양 김시식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 개방되며, 설과 추석 등 명절 당일만 휴관한다.

방문객은 문화관광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김의 역사와 전통, 세계로 뻗어나간 K-푸드 김의 긴 여정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김여익의 후손들은 김시식지 내 인호사에서 김여익의 공을 기리고 있다. 김밥, 김부각을 맛보고 김 문화를 체험하는 광양 배알도 수변 축제도 열려 광양이 K-푸드 김의 시작점이자 창의적 유산을 품은 역사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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