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 국책사업과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말 바꾸기'를 거듭하면서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내몰렸다. 오는 16일 정부의 과학벨트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여권 일각에서 대전 대덕연구지로 사실상 결정됐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여론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초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 과학벨트 입지 역시 충청권에서 멀어지는 듯 보이면서 논란이 점화됐고, 이 대통령이 올해 초 기자회견서 '과학벨트 입지 원점 재검토' 입장을 시사하면서 유치전이 격화됐다. 결국 과학벨트 입지가 대덕단지로 결정된다면 정부가 나서 오히려 국론 분열을 부추긴 꼴이 됐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지역갈등 부추기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대구·경북-부산·경남, LH 이전을 둘러싼 경남-전북, 과학벨트를 둘러싼 충청-대구·경북-광주·전남의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지역간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정부는 LH본사를 진주로 이전하고, LH분리 이전 후보지였던 전주에는 국민연금공단을 마치 '민심 달래기'처럼 이전하기로 하면서 전북에서는 "우리가 거지냐"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무산된 동남권 신공항 역시 영남 민심을 뒤흔들면서 이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기자회견에 나서야 했다.
실제로 동남권 신공항 사업과 LH본사 이전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한 것으로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을 위해 추진되는 과학벨트 사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전형적인 국책사업인 과학벨트 마저 지역갈등을 초래하게 된 것은 정부의 잘못된 대처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관되게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기자회견에서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을 고려해야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여론악화'를 고려해 막판까지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이다 별안간 결정을 내린 채 지역민들의 유치전을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하면서 민심의 이반을 자초했다는 것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영·호남에서는 과학벨트 입지 선정 발표를 하루 앞두고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인기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로비에서 농성에 돌입하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하지 않고 지역안배 차원의 정치적 논리로 과학벨트 입지를 결정했다"며 "대구·경북·울산에 과학벨트를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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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울산 과학벨트 공동유치위원회는 이날 경북도청 앞에서 지역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해 궐기대회를 갖고 정부를 강력 규탄했다. 사흘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불합리한 기준에 따라 입지가 선정되면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벨트 호남권유치위원회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김영진 민주당 의원, 강운태 광주시장과 윤봉근 광주시의회의장, 정순남 전라남도 경제부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입지선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호남권 유치위원회는 "특정지역을 염두에 둔 짜맞추기식의 정략적 심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16일 최종 입지 선정 발표 이전에 대덕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도가 난 것은 특정지역으로 정하려고 미리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