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등록금 위해 알바전전, 3만원짜리 쪽방 생활… "등록금·청년주거정책에 도움될 것"
"대학원 석사과정을 8학기 동안 다녔어요. 5학기 동안 다녀서 수료를 했죠. 하지만 '스펙'을 쌓기 위해 6,7,8 학기 등록을 하고 영어공부를 했어요. 토플과 GRE(미국 대학원 입학 능력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해 2년 정도를 쓴 거죠. 그런데 지난해 11월 미국 대학원 원서를 낼 때가 되니, 내가 왜 그 학교를 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목적이 없이 그냥 달려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민주통합당의 최연소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뽑힌 정은혜 후보(29). 정 후보는 13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스펙 쌓기'의 희생자라고 했다. 목적 없이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순간 공황장애가 찾아와 지하철에서 3차례나 쓰러지기도 했다고 한다.
대학 때는 월 6만원짜리 쪽방에서 살다가 집에 도둑이 든 적도 있다.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했으며, 대학원에 가서는 조교를 하며 학비를 댔다. 그는 그런 경험이 앞으로 대학생 청년 주거문제와 등록금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 본인 소개를 하자면.
▶ 부산에 있는 신라대학교(옛 부산여대)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작년 9월부터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다.
- 인턴 생활도 '스펙 쌓기'의 일환인가?
▶ 유학을 준비했었는데, 미국 대학원에서도 스펙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인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치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국제관계학을, 대학원 전공은 정치학을 택했다.
집이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다. 26살 때까지 여름에는 곰팡이가 피고 겨울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반지하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분기에 20여만원 하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어서 정부에서 한 반에 한 명에게 주는 등록금 지원 혜택을 받고 다녔다. 교복 살 돈이 없어 졸업생 언니들의 옷을 물려 입었다. 그렇게 내가 도움이 받았으니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2003년 민주당원이 됐으며, 이듬해 총선 때는 학교가 있는 부산 사상구에서 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했다. 2005년 서울에서 부천시 재·보궐선거 운동을 하고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 청년 비례대표이다보니, 아무래도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을텐데.
▶ 요즘 청년들은 보다 안정적인 공기업, 대기업에만 가려하다 보니 대학 때부터 거기에만 프로그램돼 있다. 성적이 좋아야 하고 영어점수가 좋아야 한다. 또 인턴을 해야 하고, 공모전도 해야 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직업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나를 맞춰가는 것이다. 재능이 다르고, 좋아하는 게 다르고, 흥미가 다른데, 사회가 그 꿈을 실현하고,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잠재력을 개발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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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게 뭐라고 보나.
▶ 등록금 문제다. 나도 대학 4년간 아르바이트 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드라마 엑스트라, 학원 강사를 했는데도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예전에도 대학 등록금이 비쌌지만, 그 때는 자녀 대여섯 중에 한두 명이 대학을 갔다. 지금은 자녀가 다 대학에 가니 집에 들어오는 돈은 다 대학 등록금으로 나간다. 그러다보니 부모님은 노후 준비를 할 수도 없다. 등록금 문제가 노후 문제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1년 동안 아는 언니와 함께 '쪽방'에서 살았다. 월세가 6만원이었는데 3만원씩 나눠냈다. 냉장고도 없어 음식을 밖에 내놓고 먹고, 보일러도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도둑이 들어 친구 집으로 옮겼다.
-이런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인가.
▶ 이명박 대통령이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라고 한 게 요즘 패러디가 되는데, 사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육은 잘 모른다. 그래서 그 분야는 좋은 정책을 낼 수 없다. 그러나 등록금과 대학생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 정치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 내가 혼자 잘나고, 똑똑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것을 학문으로, 이론으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정치는 혼자 할 수 없다. 정치인은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이나 머슴만 섬기는 게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섬길 수 있듯,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 없는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것이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섬길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복할 정책을 만들고 싶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돈이 없어서 죽고 싶은 게 아니다. 꿈이 없어서 죽는 거다. 행복지수는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이 더 높지 않나.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1위라는데, 이렇게 되는 것은 꿈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없는 것이다. 계층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꿈을 꾸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에서 국민의 절망만 가속화됐다.
-제주해군기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해군기지는 있어야 하는데, 절차상의 잘못이 문제다.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니 군인도, 주민도 감정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리더십의 실패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이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데, 가장 호감이 있는 사람은.
▶다들 훌륭한 분인데, 문재인 이사장을 존경한다. 인품이 좋으시다. 하지만 대선 후보가 결정된 것은 아니니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님이시다. 교회는 경기 부천 오정구의 상가 건물 4층에 있는데 성도가 열 몇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도 아빠 엄마가 더 좋은 일을 하시려고 우리가 어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아버지는 헌금이 들어오면 다 봉사에 쓰신다. 독거노인 무료 급식을 하는데, 미혼모를 돕는 데 쓰신다. 우리집은 반지하지만 미혼모의 집은 2층에 마련했다.
엄마 말로는 어느 달에 들어온 헌금이 총 10만원이었다더라. 그런데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해 밥을 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쌀을 사려 했는데, 돈이 부족해 외상으로 샀다더라. 그랬더니 무료 급식을 찾는 분들이 100명, 150명으로 늘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분들이 생겼다. 반찬도 보내주고, 팔다 남은 빵도 보내줬다.
거기서 엄마한테 배웠다. 어렵지만 일단 시작을 하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지금은 무료 급식에 어려움이 없다. 명절에는 떡도 해드리고, 고기도 대접한다.
-비례대표가 되고 나니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던가.
▶ 비례대표 면접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원래 준비를 완벽하게 한 다음에 뭔가를 해야 하는 성격인데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통념 때문에 걱정하실 것 같아서였다. 요즘은 부모님이 주변 분들이나 친척 분들한테 전화가 오고, 인터넷을 보면 내 사진이 나와 있으니 신기하다고 말씀하신다.